두 개의 기관차가 있는데 한쪽은 하나님의 계시가 실린 시간의 기차가 있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계시가 없고 거기 탄 탑승객들의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차가 있다 이 말이죠. 그 기차가 가는 방향이 서로 완전히 달라서 한쪽은 천국이라면 다른 한쪽은 지옥으로, 서로 상반되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70년 포로기간, 이스라엘이 포로 잡힘 자체가 하나님의 시간이 실린 하나님의 계시가 되는 거예요. 그들의 역사 속에 경험하고 있는 그들의 모든 모습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로 사용당하고 있는 거예요. 70년 포로, 이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정했습니다. 70년을 정한 취지가 이스라엘의 행복이 아니에요. 안식입니다, 땅의 안식. 하나님의 땅이 안식을 하는데 비어있어야, 70년이 비어있어야 비로소 이 안식의 땅은 제대로 처음 창조 때처럼 안식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자기 결정이고 자기 확정입니다. 이 계획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하나님 계획이지, 인간이 여기서 의견을 개진하거나 끼어들 수 없어요.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거죠. 70년. 인간하고 관계없고 토지를 안식케 하는 겁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땅의 안식을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서 열심히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나가줄래?” 하나님의 약속의 땅의 안식을 훼손하는 것이 딴 게 아니고 바로 너희들이야. 너희들을 게워낸다. 토해낸다. 치워버린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움으로써 주께서는 속이 시원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을 훼방한 그런 원수라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상상을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오해를 하느냐 하면 ‘70년 지나면 우리가 다시 약속의 땅에 살겠지.’ 라는 오해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다시 들어와 산다는 것은 어떤 조건이 성취되어야 가능하다는걸 몰랐어요. 그 땅을 훼손하게 만든 그 이유와 거기에 대한 피해를 충분히 보상했을 경우에만 다시 살 수 있었던거죠. 자기 잘못을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두 번 다시 훼손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죠. 그러면 약속의 땅에 백성은 있어야 되겠고 그 약속의 땅을 채우는 것은 기존의 쫓겨난 그 인간들은 안되죠. 그럼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의 몸이 느끼는 시간이 따로 있다 했죠. 예수님의 몸의 하실 일을 위하여 시간은 70년이라는 포로 잡힌 기간, 이 계시의 시간은 점차 점차 주님의 몸이 하실 일을 증거하는 쪽으로 접근해나갑니다. 그렇게 왜 70년인가 하는 비밀에서 풀리게 됩니다. 왜 70년이냐? 처음에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안식할 때 7일 걸리고 안식했습니다. 완성했으니까 안식일이 만들어진 거예요. 안식일은 7일 단위로 돌아가는 거예요. 7일이 훼손되었으니까 훼손된 것을 온전하게 다시 7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필요했던 기간이 70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기간을 못 지키니까 다른 몸,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진짜 이스라엘, 진짜 야곱인 예수님의 몸을 통해서 70년을 완성하게 되면 드디어 안식이 되는 겁니다. 이 안식할 때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시간은, 나중에 예수님 몸이 완성이 되어버리면 시간 자체가 없어져버려요.
70년이라 할 때 ㉮하나님의 7 ㉯하나님이 계획했던 것을 인간들이 부셨다는 것, 인간들이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가 부셨다는 그걸 나타내기 위해서 62. ㉰나머지는 뭐냐 하면 1 . 1은 1년이 아니라 결국 한 분으로 모든 시간은 거기다 응집이 되었다. 응축이 되었다. 더 이상 시간이 필요 없는 세계가 되었다. 시간이 필요 없는 세계를 묵시세계라 합니다. 시간이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는 세계. 죄 짓기 전에 시간이 있었어요,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시간이라 하는 것은 죄 지으면서 지금 미완성된 훼손된 것이 완성을 향하여 가면서 그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 시간이거든요.
■하나님나라 → 아들의 나라
처음에 창세기 때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들었다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70이레가 다 끝나게 되면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이 일을 실행에 옮기신 주님의 나라가 돼요. 아들의 나라가 돼요. 하나님 나라에서 어디로 간다? 아들의 나라로 간다고요. 그러면 예수님의 공로가 드러나게 되면서 동반해서 인간의 공로가 다 죽어버려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들 때는 하나님이 다 하셨고 그냥 인간은 혜택을 입은 것뿐이죠, 그게 에덴동산이잖아요.그런데 주의 나라, 아들의 나라에서는 그 인간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죄인으로 바뀌어요. ‘죄인이 예수님이 하는 혜택을 입게 되었다.’ 이렇게 바뀌어요.
그래서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인간과 함께 사는 게 되지만, 아들의 나라에서는 예수님 중심으로만 사는 거예요. 인간은 함께 살 권한이 있다, 가 아니라 예수님만 영광을 받는 그 세계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혜택을 입는데 혜택을 입어서 함께 산다, 가 아니라 혜택을 입는데 오직 그 혜택마저도 면류관을 누구한테 반납하죠? 주님에게 반납하는 조건으로 아들의 나라에 함께 사는 거예요. 예수님의 나라에 함께 사는 겁니다.
천국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홀로 다 이루었어요. 인간은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담할 수 없어요. 다 만들어진 걸 그냥 부여받은 거죠. 그러나 아들의 나라에서의 인간은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영원토록 계속 이어져가야 돼요. 그냥 뭐 하나님이 알아서 주겠지, 가 아니라 우리가 참 몹쓸 짓을 했습니다, 가 되어야 된다고요.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9;2)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렘25;11-12)
하나님의 안식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뭐냐? 그 원수가 등장해야 되고 원수가 벌 받아야 돼요, 다니엘은 칠십 년 마치면 우리는 다시 당당하게 약속의 땅에 간다, 이럴 줄 알았던 거예요. 이럴 줄 알았는데 칠십 년 있어도 우리가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아, 그 칠십 년이 칠십 년이 아니고 칠십 이레로구나, 칠십 이레.
칠십 년이라 하는 것은 인간들이 느끼고 있는 칠십 년, 365일을 뜻하는 이레라 하는 것은 인간이 몸으로 느끼는 1년, 2년, 하루, 한 달, 이런 게 축적된 1년, 2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 없는 상태가 지상에 시간화 되어서 내려오는 이레를 뜻해요. 그러니까 인간이 느끼고 있는 시간의 의미 없음을 밝히는 무의미적인 시간이 기존의 시간에 올라타 덮쳐버리는 거예요. 1년, 2년, 3년,...... 이런 식으로 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의미 없어요. 왜냐하면 이 시간개념은 인간이 느끼고 있으니까. 인간이 느끼는 것은 무조건 의미 없어요
이스라엘이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70년이라는 계시를 줬지만 계시적 차원에서는 하나님이 생각해놓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그것은 70이레라는, 인간들의 시간 이해를 넘어서는, 인간의 시간 이해를 빌려오면서도 그 의미, 무의미를 넘어서는 의미가 담긴 새로운 시간 개념을 여기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예요.
70년이라는 것은 70년이 갖고 있는 무의미가 의미 있게 완성이 될 때 그것은 7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70×7=490년이 아니고 70×하늘의 의미=70이레가 됩니다.
24. "Seventy `sevens' are decreed for your people and your holy city to finish transgression, to put an end to sin, to atone for wickedness,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to seal up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NIV)
24. Seventy weeks are determined upon thy people and upon thy holy city, to finish the transgression, and to make an end of sins, and to make reconciliation for iniquity, and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and to seal up the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KJV)
24. "Seventy weeks have been decreed for your people and your holy city, to finish the transgression, to make an end of sin, to make atonement for iniquity,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to seal up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 [place.](NASB)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개역한글)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개역개정)
24. 하느님께서는 정하신 기간인 칠십 주간이 지나야 네 겨레와 네 거룩한 도읍으로 하여금 다시는 거역하지 않게 하시고 죄악에서 손을 떼게 하실 것이다. 죄를 벗겨주시고 영원한 정의를 펴실 것이다. 환상으로 내리신 예언을 틀림없이 이루시어 더없이 거룩한 이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성별하여 세우실 것이다.(공동번역)
24. ○하나님께서 너의 백성과 거룩한 도성에 일흔 이레의 기한을 정하셨다. 이 기간이 지나가야,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환상에서 보이신 것과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고,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부으며, 거룩하게 구별하실 것이다.(표준새번역)
24. 네 백성들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해 70주의 기간이 정해졌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이제 죄악이 그치고 죄를 영원히 용서받으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환상과 예언이 이뤄져 높고 거룩한 분이 기름 부음을 받게 될 것이다.(우리말성경)
역사에서 묵시로 가는데는 뭔가 중간 다리, 어떤 다른 분, 인간에게 속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일을 하시는 분이 개입될 때나 가능한 거예요. 여기 누가 오시겠어요? 우리 주님이 오시는 거예요. 사람이면서도 하나님, 하나님이면서 사람인 분이 들어와서 인간의 시간,70년이라는 그 책임져야 될 시간을 주님께서는 70이레로 받아줘버린 거예요. 그 70이레에 일어난 그 모든 일은 무슨 사건이냐? 예수님의 자기완성을 위한 사건들로 채워지는 겁니다. 인간세계에서는 바로 예수님만이 하늘의 시간으로 건너가게 해줄 수 있고 인간시간은 거기에 대질 못해요.
그러면 악마는 인간에게 시간을 줬다 했잖아요. 마귀가 인간에게 준 시간의식은 자기부인이나 자기포기가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할 때까지 짬을 주세요. 시간을 주세요.’ 그 시간을 말하는 겁니다. 인간은 뭐하고 싶다? 목적이 뭐다? 행복하고 싶죠. 그런데 자기 죽어버리면 행복이 날아가버리죠. 이렇게 되면 뭐와 대척관계에 있다? 하나님의 안식과 원수관계에 있는 거예요. 결국 힘이잖아요. 힘 모으기 아닙니까? 자연의 변화를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힘을 모아서 이게 내 힘으로 모아지면...... 우리가 보다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뭐냐? 힘이 있으면 행복하고 힘 없으면 천하에 불행하겠죠. 그 힘에 의해서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 밀려버리는 거예요. 힘에 깔려버리는 거예요. 인간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악마죠, 악마가 배후에서 시도하는 힘에 의해서 하나님이 깔려서 죽어버리는 거예요. 죽어버리죠.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의 힘에 의해 깔려 죽어버리면 이 세상은 누구의 세계입니까? 오롯이 인간의 세계가 되겠죠, 인간의 세계.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죄 안 지은 존재는 없다, 라는 데에 하나님은 성공하셨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안식의 땅에 도로 들어올 위인은 이 세상에 있다, 없다? 없다, 가 됩니다. 아무도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죠. 그래서 온전하게 인간의 정체가 다 드러났죠. 마귀의 정체가 다 드러났죠.
그럼 뭡니까? 안식됐잖아요. 왜냐하면시간은 더 이상 흐를 이유가 있다, 없다? 없죠. 시간이 흐를 이유가 없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이레가 되는 겁니다. 몇 년 몇 년, 2023년 아무 의미 없어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아요. 아무 의미 없어요.
이제는 이레, 예수님의 몸에서 구현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새로운 힘이 주어지는데 그 힘은 무슨 힘이냐? 부활의 힘이죠. 부활의 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악마에게 인간에게 시간의식을 허락한 것은 너희들 자체가 죽음의 힘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죄의 힘 또 다른 말로 하면 악마의 힘에 너는 거기서 네 힘으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성공하신 거예요. 거기에 필요한 계시가 이레입니다.
시간은 시작할 때부터 최종 목적을 가진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주입된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계시가 실린 하나님의 시간인데...... 마태복음 26장 29절, 이건 한번 보셔야 돼요. 상당히 중요한 건데요. 시간이 시작했으면 어디서 멈추느냐에 관한 거예요.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마26;29) 까지, 여기 ‘까지’라 하는 것은 시작과 마감 그 전체를 보여주는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들어가느냐 그걸 말해주는 겁니다. 포도주를 마실 때까지 다시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말은 포도주가 주님의 시간이 실린 계시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님의 시간은 포도주부터 시작해서 결국은 마지막 포도주 먹는 그때까지 주의 일은 계속 될 것이고 마지막 포도주를 먹는 그 순간 모든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습니다. 그럼 그 포도주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자기 피죠. 그처럼 시간은 이미 딱 정해져있어요. 70이레, 70년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일에 대해서 자기 계시완성의 순간을 포도주 먹는 그 때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전에 예수님께서 포도주 먹는다고 이야기했어요, 아니면 내 살과 내 피를 먹는다고 했습니까? 내 살과 내 피죠.
그런데 인간의 시간이라는 것이 결국은 무엇을 못 벗어나는가?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유용성, 실용성,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의식 밖으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인간은 시간에서 못 벗어난다는 거예요. 시간에서 못 벗어나면 인간은 공간에서 못 벗어나요. 시간과 공간에서 못 벗어난다면 인간에게 안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벗어나질 못하니까. 그러니까 시간과 영원히 계속 가야 되죠. 이 말은 곧 인간이 인간에게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했잖아요.인간은 죄 때문에 시간에 갇혀있는 거예요. 죄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인간 속에 들어와서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후달리고 있는 겁니다. 얽매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까지’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그냥 갈 때까지 가보지 뭐, 이런 식이에요. 진리도 모르고 해답도 모르고 그냥 허망하게 살다가 허망하게 그냥 죽는 겁니다, 인생이라는 게. 과학이고 뭐고 생물학 백날 동원해도 인간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시간과 공간 개념은 무엇과 관련되어 있다? 힘을 키우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만큼 이 악마의 세계가 자체적으로 자기들이 살 수 있는 그것을 키워낸 거예요. 자체적으로 생산해낸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을 때는 (악마가) 하나의 뱀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뱀이 인간보다 더 커진 거예요. 에베소서 6장 12절.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개개인을 포함한 전체, 한 덩어리 전체에 대한 싸움이에요. 이 세상 권세를 다 보이는 권세 싸움이에요.
성경 전체 구절이 어디서 모이느냐 하면, 이 한 가지를 하면 성경 전체가 다 풀리는데요. 어디서 이 매듭이 다 풀리느냐 하면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있어요. 언약이 들어있어요. 언약이 들어있는데 이 언약이 들어있는 이스라엘을 누가 포로 잡았느냐 하면 바벨론이 포로 잡았거든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건드렸죠. 언약은 시간 따라 안식에 이르게 되어있고 안식에 이르게 되어있는 이것은 시한폭탄이에요, 째깍째깍 70년, 시한폭탄을 바벨론 제국이 건드린 것은 바벨론 나라가 완전히 황폐해지는 거예요. 황폐해지면서 언약의 주인공은 안식을 내다본 신약의 예수님이 되겠고 언약을 건드린 자는, 예수님이 영적인 존재 아닙니까, 하나님이죠, 영적인 존재를 건드렸다는 말은 이 바벨론이 영적인 존재로 전환되어야 돼요. 그러면 바벨론이 짐승이 되면서 이 짐승은 영적인 존재에요. 아담과 하와가 뱀이라고 생각했지만 뱀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악마가 들어있죠. 영적 존재였죠. 바벨론이 짐승이라 했지만 사실은 짐승이라는 영적 존재가 되는 거예요. 여기 짐승에 악마가 들어있었던 거예요.
그러면 계시의 진행과정에서 시간이 마감이 될 때, 아까도 얘기했지만 마감이 된다는 말은 드디어 악마의 체포 날이 가까이 오게 되면 시간은 이제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거예요. 안식하는 거예요. 이게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옵니다. “천년이 차기까지” 요한계시록 20장 5절. 천년이 차기까지. 그다음에 뭘 한다는 게 아니라 그 ‘까지’라는 것은 시간 자체 하나님의 계시 자체가 목표에 도달해서 끝났다는 뜻이에요. 드디어 도달점에 이르러 밝힐 걸 다 밝혔다, 완성될 걸 다 완성했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짐승에 속한 적그리스도 이것들을 요한계시록 20장에 유황불에 집어넣게 되면 시간은 끝난 거죠 (계 20:10, 14). 그렇다면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짜놓은 하나의 속임수였습니다. “만만하냐?” 이렇게 나오죠. 이스라엘을 만만하게 보고 침투했는데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언약과 계시를 건드린 게 돼요.
오늘날 이스라엘이 누굽니까? 성도죠. 성도 안에는 뭐가 있어야 성도죠? 그냥 교회 다닌다고 성도 아니죠. 하나님의 살아있는 계시가 있어야 되겠죠. 이 계시가 십자가 이후이기 때문에 이미 성도 자체가 종말적 존재라 해요. 하나님에 의해서 그냥 마지막 때에 등장하는 것이 성령 공동체거든요. 마지막이기 때문에 온 거예요. 성령이 왔다는 것은 이제는 너하고 나하고 달라, 가 아니라 마귀하고 다르죠. 왜? 마지막 때는 이 영적 존재가 모든 것을, 자기 정체를 더는 감출 수 없는 시대에 오기 때문에.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당부하기를 좀 사람하고 상대하지 마라 이 말이죠. 우리의 상대는 악마죠. 공중 권세 잡은 자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내가 관측할 수 있는 내 행복을 내가 소지하길 바라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이 어디서 쫓겨났습니까? 하나님이 안식해야 될 그 땅에서 추방되었잖아요. 그럼 이거 고치고 들어가야지. 고칠 수 있습니까? 무슨 수로 고쳐요? 못 고치죠. 중요하니까 다시 해보겠습니다. 무엇이 악이다? 내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악이다. 그게 죄다. 그렇다면 이 말은 성경적으로 보게 되면 죄인 아닌 자는 없다. 죄인 아닌 자를 없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성전 돌아와서 성전 지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스라, 느헤미야 그 이야기입니다,
그 성전 지을 때 하나님께서 언급한 게 있습니다. 그게 스가랴에 나오는데 스가랴 7장 5절요.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그들은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율법대로 금식하면서 지켰는데... 실컷 금식했거든요. 하니까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해서 그 금식이 진정 나를 위함이냐, 아니면 너희를 위함이냐고 묻는 거예요. 심지어 이런 이야기해요. 네가 할례를 행했지만 그게 마음의 할례 행한 거냐? 마음의 할례를 무슨 수로 합니까? 마음 잘라야 되는데 어떻게 마음 잘라요? 자를 수가 없는데. 마음 자르려면 골로새서 2장에 나온 대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야 되지. 그게 마음의 할례, 세례거든요. (골 2:11-12) 그런데 예수님 오시기 전에 인간은 된다, 안 된다? 인간은 못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뭐냐? 시간은 뭐냐? 그 시간을 줌으로써 하나님이 70년이라는 것 또는 70이레를 줌으로써 어떤 인간도 죄인 아닌 인간은 단 한명도 남기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자기 계획이었습니다. 단 한명도 죄인 아닌 인간이 없어요. 다시 말해서 악마한테 사기당하지 않은 인간은 단 한명도 없다. 교회 가면 교회한테 사기당한 거고 교회 안 나가면 본인한테 마귀한테 사기당한 거고. 이래도 사기당하고 저래도 사기당한 거예요.이게 종말된 현상입니다. 이리로 가도 지옥이고 저리로 가도 지옥이죠. 이건 공간개념이죠.【어제도 지옥이고 오늘도 당신 땜에 내일도 지옥이고.】 도무지 안식의 때가 없고 피할 곳도 없어요.
성도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렇게 대처합니다. ㅎㅎ하든지 ㅋㅋ하고 있어요. 왜? 위에서 보니까. 골로새서 3장에 우리는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어디 있다 합니까? 우리는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다 되어 있죠 (골 3:3). 제가 바꾸겠습니다. 여기 없다. 우리의 생명은 여기에 없어요. 이곳에 없는 거예요. 이곳하고 안 놀아.
인간은 자유를 줘도 자유를 감당 못해요. 맹종할 수 있는 전체주의. 전체주의로 간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책임을 져야 되고 또 책임보다 더 무서운 경우가 뭐냐, 자유를 줘버리면? 사람이 고독해요. 고독과 책임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누구한테 빌붙어 사는 게 편해요. 인간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노력→결과→평가→보상, 이 논리만 인간은 기억해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이 구조를 또 달리 이야기하죠. 희망이 있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희망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행복해서 뭐하는데, 그래? 거기에 대한 답은 없어요.
인간이 예측하죠.
하나님은 완전히 달리 이야기하십니다.미래는 예측이 아니고 미래는 창조된다.없는 데서 창조되는 거죠, 날마다. 주님이 주인공 돼서 날마다 만들어져요. 창조라 하는 것은 없는 데서 있죠. 그럼 창조되기 위해서는 여기 무슨 요소가 들어가야 되느냐 하면 ‘죽음’이 들어가야 되겠죠.
성경 로마서 6장에 보면 죽음은 왜 오느냐 하면 죄의 값이었잖아요, 죄의 값. (롬 6:23) 그러니까 죽음으로써 어떤 인간도 안 죽을 만큼의 의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를 주님의 개입으로 하나님이 증명한 거죠. 하나님이 증명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살아계시고 어떤 인간도 애초부터 산 인간은 없었다, 가 되죠.
다니엘이 70년 포로기간의 의미를 깨달았다, 70이레. 이게 얼마나 대단한 계시입니까. 대단한 계시의 여부는 인간하고 상대하는 게 아니고, 인간 말고 뒤에 나와. 대장 나와. 대장이 누구에요? 악마잖아요. 그 악마를 체포할 때까지 주의 일은 계속되는 겁니다. 이미 체포했죠. 이미 체포한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예수님이 내 살과 내 피를 마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모든 시간을 끝냈습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이에요. 말이 안 되잖아요. 천년이 하루 같다. 인간이 관측하고 인간이 관찰하는 모든 시간 개념, 인간이 관측하는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변화와 그 변화 사이, 해가 떴다 해가 졌다 그런 하루,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것, 인간이 가능한 것 그것은 주님에 의해서 이제는 주님께서 그걸 무의미로 처리해버렸어요.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예수님의 몸이다이렇게 축약할 수가 있어요. 시간은 예수님의 몸이에요. 시간 속에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활동이 나옵니다, 활동. 이 활동이 안식이에요. 안식이 나와요.
시간에 두 종류가 있다 했죠. 하나는 계시가 실린 시간, 예수님이 실린 시간, 주님의 시간을 성경에서는 ‘때’, 내 때가 아직 남았다, 할 때 때로 이야기해요. 인간의 시간은 악마의 시간이죠. 인간에게 뭘 부여한다 했어요? F=ma,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 시간을 좀 달라. 시간 지나면 힘을 더 끌어 모을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어디서 어디를 공격할까요? 주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폭격하죠. 공격하죠. 뭐로 공격하느냐? 성령으로 공격합니다. 공격하는 순간 인간의 시간이 아니고 육의 시간, 폭격함으로써 인간은 이미 죽었다고 봐요. 죽은 자의 특징은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아요.
그러면 그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주의 복음이고요.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묵시적 시간에 드디어 합류가 돼요. 거기에 들어가면서 예수님의 세계에 완성된 것, 다 이루었음을 증거하는 그러한 육신으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졌다는 개념은 없어요. 왜냐하면 어제도 죽었지만 오늘도 죽이고 내일도 항상 나를 죽이는 그 자체가 너는 죽은 자고 네 안에 내가 살아있다, 주님이 살아있다, 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 몸을 사용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성령이 역사를 하게 되면 그동안 주님의 일을 가렸던 내 일이 주님의 일을 가렸었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증거하게 돼요. 그러니까 나의 치료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게 중요하죠.
이미 우리는 천국생활이 시작된 겁니다. 어디를 가든지 지옥이죠. 성도 같으면 어딜 가도 지옥인 것을, 그다음에 ㅋㅋ, ㅎㅎ, 히히히. 어느 때도 지옥 아닌 순간이 없다 ㅋㅋ. 신난다. 성령의 신바람. 그걸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사적인 목적, 개인적으로 나를 지키려고 하는 이유, 나의 행복, 필요한 힘, 정보, 지식, 그걸 얻기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게 오히려 마귀한테 속아 넘어간 사실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마지막 때에 죽은 자를 통해서 주님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용도로 저희들을 일방적으로 채택해 주셨사오니 다니엘을 통해서 더욱더 주께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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