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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2021. 12. 22. 09:33

377강-YouTube강의(집 고린도후서 5:1)20211221-이 근호 목사


제377강, ‘집’. 집이라 할 때 구약에서 말씀하는 집과 신약의 집이 달라요. 구약의 집은 시편 127편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말씀은 내가 집 지으라 할 때 집 지으란 뜻이 아니고, 내가 집 지으라 하지 않더라도 너희는 본성상 집이 꼭 필요하다고 너희들은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 땅의 삶을 살고 있다는 그 점을 하나님 내가 알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집 지을까요, 말까요?’ 이걸 물어볼 것도 없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 땅에 살면서 집 없이는 못 산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구약 자체가 토지라는 수평적 무대를 갖고 있어요, 토지, 땅. 그 정해진 땅에서 이스라엘 약속의 땅. 어쨌든 약속의 땅도 땅이잖아요. 땅에 자기 백성을 거기다 두면서 그 백성들이 땅에서 생명을 목숨을 부지하면서 어떤 현상들을 보이는가를 주께서 관찰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다가 담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집을 짓는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않아요, 본성이기 때문에. 집 지었나? 한옥 지었나, 양옥 지었나? 그래, 집 지어. 하지만 무슨 요소가 들어가야 되느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집 지을 때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집 짓는다,가 아니고 그 집 지을 때 누구를 위한 집이었느냐를 주께서 묻습니다. 너 자신을 위해서 집을 지었는지, 너 살기 위해서 집을 지었는지,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면서 집을 지었는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집을 지었는지를 묻는 거예요.

그게 바로 이방민족과 이스라엘이 차이나는 점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집이 없으면 못 산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니까 그걸 문제 삼는 게 아니고, 집이 없으면 찬바람에 얼어 죽잖아요. 못 살잖아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게 누구를 위한 집이냐 이 말이에요.

단지 나를 살리기 위한 집 같으면 이방민족이나 다른 땅에서 사는 민족하고 이 약속의 땅에서 사는 민족하고 차이점이 없잖아요. 집을 하나 짓고 밥을 하나 먹고 무슨 행동을 해도 다른 이방민족, 택함을 받지 않은 민족과 택함을 받은 민족과의 어떤 차이점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집을 지어야 되죠.

집을 짓는 것은 시편 127편에 의하면 인간의 삶의 기본으로 봐요. 집 없이 추운 데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2절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아까는 집을 지을 때 나를 위한 집은 여호와께서 개입하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그다음에 사람은 집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집은 기본이고 그 집을 기본으로 기초로 해서 일을 하잖아요.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 이것도 헛되다는 거죠.

쉽게 말해서 집은 세우고 지키고 그 안에 거주하는 것. 이것은 인간의 목숨 부지의 가장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주님께서 그걸 말한 것이 아니고 백날 집 잘 짓고 백날 밥 잘 먹어도 주님 보시기에 헛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을 너희들이 고려해봤느냐, 그걸 한 번 생각해봤느냐.

너희들끼리 좋은 집 짓고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면 그러면 됐지, 라고 끝나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 짓는 데부터 관여하고 먹고 마시고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하는 모든 일에 주님이 관여해주어야 이게 하나님의 친백성답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 3절에 자식이 태어나는 것도 네가 낳은 자식이 우리 가문을 계속 이어주면 좋겠다 해서 자식을 주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한테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나님이 함께 집에 관여하고 하나님이 함께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데에 관여했을 때 어떤 결과가 주어지느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상(賞)이란 이름으로 자식을 주는 거죠. 이것은 결국은 하나님이 함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해서 5절에 보면 “이것이 그 전통(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자식을 하나의 화살로 보는 겁니다. (4절)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자식이 많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우리 가정에 주도적으로 일하신다는 증거가 되게 되면,

그다음 5절에 어려운 것은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 이 원수라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 이방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방나라와 이스라엘과의 차이점을 시편 127편에서 하나님이 개입했느냐, 개입하지 않았느냐의 여부로 이렇게 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집이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시편 127편에서는 인간 삶의 처음 부분에서 집을 언급했죠. 그러면 신약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신약에서는 이 땅에서 이미 우리가 죽은 자가 돼요. 죽은 자는 이 땅에 더 이상 집이 있을 필요가 없어요.

그렇다면 구약 시편 127편의 그 집이라는 개념이 신약에 오게 되면 어떤 식으로 그 본질을 보이느냐.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그 내용이 나와 있어요. 이런 점이 상당히 난해해요. 거기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구약에서는 내 몸 따로 있고 그 몸이 거주해야 될 집, 건축구조물이 따로 있어가지고 그 집을 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친히 세워주시는 것이 약속의 백성들이 이 땅에 사는 방법이라고 구약에서는 그렇게 언급하는 거예요. 땅이라는 무대가 있거든요. 그런데 신약에 오게 되면 십자가로 인하여 이미 우리는 죽은 몸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집이고 절이고 필요 없고 몸 자체가 우리의 집이 되는 겁니다.

이 말은 시편 127편의 완성이 되면...... 시편 127편에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죠. 신약에는 이렇게 되는 거예요. 네 몸을 내가 개입하지 아니하면 네 몸이 하나님이 원하는 영광스러운 집이 될 수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집이 없는 생명은 없는 거거든요,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러면 신약의 집은 뭐냐. 네 몸이야. 영광스럽게 네 몸이 네 집이야. 이렇게 고린도후서 5장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영원한 집은 네 몸이 영원한 집이 되게 하겠다는 겁니다.

자, 집 없으면 못 살아요. 집이 있어야 거주하는 겁니다. 집 없이는 못 산다, 집 없이는 거주 못 한다, 그 집의 개념이 신약에서는 몸이라는 것으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몸이라는 것으로. 그러면 신약에 와서 만약에 주께서 손댄 몸,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을 말합니다, 주님의 부활의 몸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3절에 보니까 그것은 벗은 자로 발견될 것이다.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벗은 채로 발견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절에 보면 “이 장막에 있는 것은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몸은 그냥 있고 외부에서 뭔가 덮치는 거예요. 덮치는 것을 ‘삼킨다’라고 한 거예요, 삼킨다. 요나 선지자가 고래를 이겼습니까, 아니면 삼킴을 당했습니까? 요나가 고래를 이겨서 산 게 아니고 놀라운 사실은요, 요나가 고래한테 졌어요. 짐으로써 생명을 얻은 겁니다. 자기 안식처가 바다 속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 망망대해 깊은 바다 속에서 집이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요나를 삼켰던 고래가 본인의 집이 된 겁니다. 그 집을 누가 마련해줬겠습니까? 그 집 마련할 때 대출 얼마 냈어요? 은행에서 5억 대출받았습니까? 아니죠. 고래를 준비해서 삼켜버린 거예요.

이 요나의 표적이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적이에요.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되는 십자가의 효력입니다. 제발 너의 죽은 것을 네가 변신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생명에 삼킴 당해버려라. 그게 바로 여호와께서 친히 세우시는 집이다 이 말이죠.

거북이처럼 껍데기를 자기 손으로 벗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죽어가는 몸, 이게 홀로 있으면 지옥이죠. 그러나 홀로 있는 몸에 위에서 덮쳐버렸어요. 주님의 몸은 뭐냐. 주님의 영광된 부활의 몸이 주님의 집이에요. 주님의 집이 허름한 우리 집을 깔고 눌러버린 겁니다.

그걸 뭐로 보증하느냐. 5절에 보니까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가 보증한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성령을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신 것을 어떻게 아느냐. 6절에 “항상 담대”하라. 이게 정답입니다. 항상 담대하라.

자기만 보지 말고 덮쳐져 있는 주님의 부활의 효과, 죽음도 이기는 효과, 그 효과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못난 몸 가지고 뭐 별로 돈도 없고 재산도 없이 초라한 몸이지만 당당하게 살 수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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