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원형

아빠와 함께 2021. 11. 3. 07:05

371강-YouTube강의(원형 요한복음 1:5)20211102-이 근호 목사


제371강, 제목은 ‘원형’. 인간은 복사물이에요, 원형이 아니고. 복제물. 그것을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DNA의 결과물 또는 DNA의 유형체, 가현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DNA는 너무 작아서 안 보이지만 DNA가 만들어낸 그 형태는 인간의 이런 모습들로 나오는 겁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을 형성하고 수정란에서 꼬물락 꼬물락 머리 자리, 엉덩이 자리, 팔 자리, 사지가 배분되어 나오거든요. 줄기세포에서 모든 것이 나오듯이 배분되어 나온다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게 신기하니까 또는 태어나서 유전병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원형을 찾기를 바랐던 거예요. 그 원형을 찾았는데 그게 DNA였습니다.

그런데 DNA로 만족하지 않고 DNA는 뭐로 되어 있는가, 그걸 알아야 인위적으로 DNA를 조작도 할 수 있고 인간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DNA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DNA를 보니까 이건 분자구조에요. 분자구조라는 말은 아무런 감정도 없고 이성도 없고 느낌도 없고 그냥 냉혹한 분자구조란 말이죠. 기본 물질 원소가 백 몇 가지가 되는데 그 중 몇 개를 골라서, 물론 유기체는 탄소 중심이니까 탄소 중심으로 고른 분자구조가 DNA에요.

다윈이라는 사람은 그랬어요. 인간은 원소에서 태어났다고. 원소에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DNA에서 태어난 거예요. 더 나아가서, DNA가 다가 아니에요. 분자에서 태어났어요. 분자가 다가 아니고 원자에서 태어났고 원자핵에서 태어났고. 양자에서 태어났고.

나를 알기 위해서 원형을 찾는데 원형을 너무 세밀하게 쪼개버렸어요. 쪼개니까 알맹이가 나올 게 아닙니까. 알맹이를 더 쪼개보니까 에너지뭉치에요. 결국 인간의 어머니는 에너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반박해보라. 반박 안 됨. 반박 되지를 않는 거예요. 그럼 인간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뭐냐. 각자의 에너지가 변형을 일으킨 거죠.

그걸 한마디로 말해서 의미 없음. 인간의 모든 것은 결국 원형을 살펴보니까 인간은 ‘의미 없음’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과학에서 의미 없음이 되는데 성경에서는 그것을 ‘어두움’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둠.

여러분 잘 알다시피 그게 요한복음 1장에 나옵니다. 1장 5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라고 되어 있어요. 말씀이 굉장히 오묘하고 난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어두움은 감정이라는 게 없어요. 어두움이 무슨 웃는 게 있고 우는 게 있겠어요? 어두움 자체가 뭘 깨닫는 게 있겠어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럼 어두움은 깨달아야 돼요? 어두움은 꼭 깨닫는 것을 해야 됩니까?

‘나의 원형이 뭡니까?’ 라고 물을 때는 ‘나는 이렇다’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요한복음에서. 모든 인간을 일괄적으로 이렇다고 하고 그 중에 부분이 저와 여러분들이에요. 개인을 콕 집어서 ‘나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는 거예요, 질문 자체가. 그렇고 그런 인간들인데 뭘 더 개성이 있다, 없다가 아무 의미 없어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떤 차이라는 것을 성경적으로는 둬서는 안 돼요. 어둡다는 점에서 똑같아요, 어둡다는 점에서. 어두움에서 태어난 거예요. 빛에서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두움에서 태어난 거예요. 어두움에서 태어나가지고 공부 좀 하고 출세 좀 해보려고 강남의 아줌마들은 스카이 캐슬 비슷한 모임 갖고 백날 해봐야 어둡잖아요.

성경은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어두움이 뭐냐? 생명이 없는 게 어두움이에요. 그러면 생명이 있으려면 누가 가져다줘야 돼요. 가져다주는 것을 빛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5절까지 나오는 내용이 그건데요. 그걸 창세기 1장과 비교해도 통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처음에 이 세상에는 혼돈과 카오스죠. 혼돈과 어두움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첫 날에 만든 게 뭡니까?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더라”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신 분이 신약성경에는 빛으로 오신 거예요.

어두움에 속한 사람 입장에서는 빛이라 하는 것은 1초에 30만 km를 가는 어떤 실체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 빛은 광자로 되어 있어요. 광자는 일종의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고. 지금 그것까지는 알아냈어요. 그러나 과학자들이 아무리 애써도 그 빛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그건 몰라요.

태초의 빛은 어디서 왔는가. ‘빛이 어디서 왔는가?’ 라는 질문을 과학자들은 바꿉니다. ‘에너지는 어디서 왔는가?’ 그래서 기껏 이야기하는 것이 에너지는 옆 동네에서 왔다. 이걸 가지고 바로 다중우주론이라 합니다. 옆 동네에서 왔다. 그럼 옆 동네 우주는 어디서 왔는가? 그건 옆 동네에서 왔겠지 뭐. 그럼 그 옆 동네는 어디서 왔는가? 세상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출발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다. 이게 바로 과학자들의 결론이에요.

이게 과학자들의 결론이고 불교 믿는 사람들의 결론이고 철학하는 사람들의 결론이에요. 그냥 그대로 있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내추럴하게 자연그대로. 그래서 이름이 자연이에요. 그래서 자연을 공부하는 것을 자연과학이라 합니다. 경제는 사회과학. 언어학은 인문과학. 전부다 뒤에 ‘과학’을 붙여요. 지금은 과학밖에 없어요. 종교는 뭐냐. 종교는 사회과학이에요, 종교니까. 아무리 연구해도 그들이 아는 빛에너지는 빛이 아니에요. 그것은 만들어진 빛이죠.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빛은 빛 자체가 오시는 거예요, 빛 자체가. 빛 자체가 오게 되면 ‘인간은 왜 죽느냐’가 해결돼요. 인간이 왜 죽느냐 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는 거예요.

그럼 그 말은 외부에서 가져다 준 생명이 있다면 죽어도 괜찮죠. 죽어도 괜찮은 거예요. 왜냐하면 그 생명은 죽었다가 살아난 생명이기 때문에 죽음이 끝이 아니다 이 말이죠. 생명이니까.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이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말미암아 이끌어냄을 당한 빛이 돼요. 그것을 빛의 자녀라 해요.

1장 9절에,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기존에 세상의 빛하고 다릅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 빛이 직접 빛을 비추게 되면 그 빛이 비춰서 영생을 얻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차이점이 뭡니까? 어떻게 구별합니까? 간단하죠. 나는 어두움에서 출발했고 어두움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생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미 생명을 받은 사람만 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발언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부럽지 않습니다. 당연히 시기나 질투를 하지 않습니다. 백날 출세해봐야 부자 되어봐야 그들은 어두움이기 때문에. 많이 어두워라. 어둡게 하다가 어두운 곳에 가거라, 이 인간아.

어떤 세상에 대해서 주눅 들지 않는 것. 세상에 대해서 겁먹지 않는 것. 그걸 한마디로 말한다면, 빛 있어요? 생명 받았습니까? 그러면 당당하세요. 이 세상을, 여러분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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