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복음

아빠와 함께 2021. 8. 11. 12:06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삼하22;3)                                      하나님은 이 땅을 상대로 전쟁하고 있는 중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니까 고치겠습니다. 구출이라는 말은 전쟁 중에 구출. 하나님이 땅을 상대로 벌이는 그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하여 이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세계로 구출당하는 그 일을 누가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힘으로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고 평정된 세계에서 습관적으로 그만 이 세상에 길들여 살기 때문에. 악마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할 수가 없어요.그래서

①우리에게 율법을 주심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이 죄에 대해서, 율법이 요구하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 시험문제에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요.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구나. 그걸 절감해서 구원과 구출의 의식을 유발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②사도바울에게서 나오는 모든 명령과 지시는 어디서 나오는가. 십자가복음에서 나왔어요. 십자가복음에서 나온 명령과 지시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어떤 경우냐 하면은 십자가 지신 그 능력이 아니면 못 지키는 거예요. 지킬 수가 없어요.내 권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 내가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느냐. 견지할 수 있느냐. 그게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③그래서 이 땅 전체가 피할 곳이 없도록 전쟁마당으로 만들어버려요. 땅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켜서 거기서 전리품으로 내가 빼낸다. 그 작업입니다. 창세기 14장을 한번 봅시다. 아브람이 318명의 사병을 가지고 동맹한 자들과 연합군을 만들어 이겼잖아요. 이기고 난 뒤에 17절을 보게 되면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절,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20절에 나옵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다시 말해서 이 적이 나의 적이 아니고, 내 위주로 나를 지키고자 위한 전쟁이 아니었고, 그냥 말려든 것이고. 이 전쟁은 이 지상에 하나님의 흔적을 가진 예루살렘의 왕 멜기세덱의 그 가치와 하실 일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상에다가 지점을 만들어서 지상에서 악마와 싸움을 하는 그 일에 아브라함이 참여가 된 겁니다. 그 전리품이 뭐냐 떡과 포도주였습니다.아브라함 본인 자체가 멜기세덱이 싸우는 전쟁에 자기가 하나의 전리품으로서 악마로부터, 악마의 손에서, 이 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난 겁니다. 그래서

④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이 몸의 남은 인생은 제 것이 아니고 바로 당신이 승리한 열매에 불과합니다.” 하고 기꺼이 십일조를 드린 거예요. 십일조를 드린다는 말은 우리 관계가 십일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나는 사나 죽으나 나의 것이 아니고 주의 것입니다. 로마서 4장 8절을 본격화시키는 겁니다.

⑤그 예루살렘과 멜기세덱 그리고 언약궤가 왔을 때, 그럼 언약궤가 어디에 쓸데있느냐, 사무엘하 마지막에 봅시다. 드디어 이제 마지막에 다윗이 3항조, 3항조 말 자체가 어렵죠. 16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17절,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자기가 피의 복수자, 언약이 언약대로 실행되는데 제가 기꺼이 희생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다음에 아라우나에게 자기 돈으로 값을 다 치러서 값을 주고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며 이스라엘에게 내린 재앙을 그쳤더라. 여기서 사무엘하가 끝납니다. 그러니까 재앙이 마땅히 주어지는 땅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재앙을 받아도 싼대 뭔가 다른 민족에게 없는 요소가 이스라엘 속에 함께 같이 공존하고 있더라는 겁니다.그게 누구냐, 다윗이 아니고 다윗언약이에요. 왜? 다윗은 죽어도 다윗언약은 살아나야 되니까. 다윗언약이 이루었던 그 본질이 약간 다윗 시대에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증상을 보인 것 뿐이에요. 오늘날 우리 시대가 십자가의 증상을 보이는 기능을 우리가 맡은 것처럼. 성령을 통해서. 다윗입장이나 오늘날 우리 입장이나 마찬가지에요.
사도행전 2장 보겠습니다. 마지막 끝내면서 전체를 쭉 훑어보면 좋겠죠. 여기 사도행전 2장 27절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참 이런 게 어려워요. 25절에 보면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이 시편 16편은 누가 썼느냐 하면은 다윗의 고백이에요. 그런데 베드로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다윗으로 보이느냐? 아니다. 다윗언약으로 봐야 된다. 다윗언약의 주인공은 다윗이 아니다. 다윗언약인데 다윗이 주인공이 아니면 누구냐?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서, 미리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나중에 나타내고, 미리 숨겨서 그 다윗시대에 성령을 보내가지고 예수님 자신을 나타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을 고백했다. 이래 보는 거예요. 그 고백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 자기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죽어도 썩지 않는다. 이거거든요.나는 죽어도 썩지 않으면,

⑥시편의 저자가 다윗이 안 되려면 다윗은 필히 썩어야 됩니까? 썩지 않아야 됩니까? 마지막 질문입니다. 썩어야 되죠. 우리는 죽어야 돼요? 살아야 돼요? 우리는 죽어야 돼요. 죄인은 죽어야 돼요. 죽는 이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간증입니다. “나는 죽는다. 와! 기분이 왜 이리 좋은지 몰라.” 이게 사망으로 옮겼던 자들의 특징이에요. 특징. 그래서 지금 늙은 냄새나고 늙은 색깔이 나오고 하는 거예요. 그거는 언약대로 마땅한 겁니다. 나이 먹는다고 그걸 너무 서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옛날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야. 왜 떠는지 모르겠어. 기억이 다 떨어졌어.” 그거는 자아가 만든 환상이에요.이거는 멀찍이 아직도 권력을 쥐고 있는 겁니다. 여기 등장인물들하고 똑같아요. 등장인물들 많았죠. 그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결국은 다 소멸되고 남는 것은 다윗은 왕으로 옹립되었다. 하지만 그 다윗마저 주인공이 아니었고 다윗언약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⑦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것을 다윗이 아니고 네 후손에게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한 거예요. 그 후손이 누구냐, 로마서 1장 1절에서 4절로 보면 바로 예수님이 복음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성경 전체가 누구 이야기냐,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무엘하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 모습하고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늘 예수님과 비교하면서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율법세계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210802 "9강 제사장 다윗"

'내 생각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선지자의 죽음  (0) 2021.08.12
물고기 뱃속의 요나  (0) 2021.08.12
죄의 발견  (0) 2021.08.08
그리스도의 비밀  (0) 2021.08.06
죽음 자체가 살아나는 매일  (0)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