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지혜있게 사는 방식은 우는 겁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가 제대로 세상을 이해한 사람입니다. 안 울기 위해 이를 악무는 자는 이빨만 깨어질 뿐입니다.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 울 줄 모르는 사람이나 울 기회가 없는 사람은 계속 악마가 심어주는 세상관에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성도를 울게 합니다. 그래서 정 떨어지게 합니다. 이 세상은 이런 상황을 유발하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무대입니다. 실컷 울고 또 울고, 그래서 맨날 우는 본인에게도 정 떨어지도록 울어야 합니다. 울 수 있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능력입니다.
세상에 대해 몹시 실망해야 합니다. 늘 실패로 이어져 나중에는 실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원하고, 갖고 싶고, 누리고 싶고, 보고 싶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성도는 끝까지 갖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서러워서 웁니다. 이 세상은 성도의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타국이었습니다.
“떠나라, 울면서 떠나라” 하나님의 지시는 한결 같습니다. 정들면 떠나야 하고, 미련 생기면 떼 내야 합니다. 피부층을 벗겨내는 아품으로 매일같이 울어야 합니다. 오늘도 울고 내일도 웁니다. 살아생전 반복되는 이 아픔과 눈물의 현장이 곧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삶의 현장입니다.
예수님도 이 경로를 밟았습니다. 성도의 기쁨이란 수시로 눈물을 훔쳐 뿌려내면서 예수님의 피 흘린 발자국을 찾을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 기쁨을 울면서 찾읍시다.
-요한계시록 머리말-에서 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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