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2015년 8월 12일 본문 말씀: 에스겔 48:21-29
(48:21) 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히 구별할 땅의 동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 척이라 다른 분깃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왕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 (48:22) 그런즉 왕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48:23)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베냐민의 분깃이요 (48:24) 베냐민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시므온의 분깃이요 (48:25) 시므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잇사갈의 분깃이요 (48:26) 잇사갈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스불론의 분깃이요 (48:27) 스불론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갓의 분깃이며 (48:28) 갓 지계 다음으로 남편 지계는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48:29) 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분깃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변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원하는 것들만 눈에 모으고 채집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다 놓치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게 되면 자신에게 전혀 소용없는 내용이다고 대부분 물리칠 것입니다. 현재 자기에게 꼭 필요하냐 아니냐는 본인들이 그때그때 정해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은 본인들이 그렇게 처신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모집한 것들 안에 자기를 숨기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런 인간들의 실정을 전체적으로 외부에서 폭로하는 말씀이 됩니다. 단순한 땅 배당받는 대목같지만 여기에 천국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히브리서 11:13-16에서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지상의 삶에서부터 이미 천국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본토 아비집에서 불러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고향은 ‘본토 아비집’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달리 말씀하십니다. 본향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하늘에 있다는 겁니다. 처음 본토 아비집에서 불러낼 때에는 ‘아브람’을 불러내었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통해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뀝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원래 아브라함의 고향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데 이 천국을 나타내기 위해 아브라함은 잠시 ‘아브람’으로 살아야했고, 본토 아비집에서 그 집의 아들로 태어나야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이 진찌나 원본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진짜요 원본입니다.
고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대아 우르가 원래 진짜 고향이 아니라 하늘나라 예루살렘성이 진짜 본향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이 땅의 삶은 어디까지나 모형입니다. 본인들을 포함해서 그러합니다.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는 평소에도 붙박이 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그 박혀 있는 별이 움직이고, 그 움직이는 별따라 와봤더니 거기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무엇인가요? 동방박사 본인들부터 포함해서 모든 것이 예수님을 드러내는 재료요 도구들입니다. 이것은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실체는 이 세상 것으로 표현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에 왕의 땅이 있고 아래 위로 그 왕의 통치를 받는 지파들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왕과 12지파와의 관계로 이어져있는데 이 관계가 곧 천국의 본질을 말해주는 무늬입니다. 즉 왕이 12지파는 도대체 어떠한 관계로 맺어져있기에 그들은 왕이 주는 혜택을 만끽하느냐를 알아봐야 합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 나라가 왕이 구체적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왕없는 나라, 보다 정확히 말해서, 왕 자리가 비워있는 나라입니다. 왕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12지파를 대표하고 총괄하는 초월적 지위를 가진 지파는 있었습니다. 그 지파가 바로 레위지파며 에스겔 선지자는 바로 그 지파 출신입니다. 이 지파는 자기 땅에 농사지어서 갱존하는 지파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 제사만 드리는 지파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파가 이스라엘 12지파를 대변한다는 것은,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확정된 관계를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관계란 다름아닌, 죄있는 존재가 어떻게 거룩하고 흠없으신 하나님과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동거할 수 있느냐 하는 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제사에 의해서 죄가 어떤 식으로 의로 바뀌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집단이 생존한다는 것은 그들의 농사법이나 행정법하고는 상관없이 오로지 중앙으로 시행되는 제사제도와 관련있습니다. 이 제사제도를 가지고 ‘모세언약’, 혹은 ‘레위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사에 사람들이 동원되어 치러지는 가운데서 인간들이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전쟁에서 패배를 경험한 뒤에 항상 차후적으로 알려집니다. 먼저 알려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치되게 충족시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법에 충실해도 막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미흡함과 오류가 뒤늦게 파악되기 마련입니다. 제사제도의 한계가 보입니다. 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능력에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 언약의 취지를 그대로 두면서 이 제사의 온전함을 위해 왕이 투입되는데 그 왕이 바로 다윗왕입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이 ‘다윗언약’입니다. 다윗언약은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모든 백성의 책임과 죄책을 일임하는 제도입니다. 디윗왕 수하에는 제사를 전적 담당하는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왕이 제사를 지도합니다. 그 방식은 온전한 왕의 행실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결코 온전한 인물이 되지 못하고 후대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왕은 실은 진짜 영원한 왕이시오 제사장 되시는 분은 가리는 모형의 역할을 하는 인생을 살았던 겁니다. 다윗이 죄로 삭제되어 버리면 그 다윗의 자리에 참된 영원한 다윗왕이 등장합니다. 곧 백성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기 위해 가져가시고 의로움으로 되돌려주시는 분입니다.
꼭 세탁소 직원 같습니다. 개인 가정까지 방문해서 더러운 세탁물 알아서 수거해가고, 돌려줄 때는 깨끗한 세탁물이 되어 돌려줍니다. 이러한 혜택은 오직 야곱의 후손인 12지파에게만 해당됩니다. 다른 백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12지파란 왕의 위상이 하늘로 정해지므로서 범세계적 의미로 확대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가 대신 죄를 담당하는 왕의 자리라서 영원한 하나님 앞에서도 의인이 될 수 있는 관계에 놓여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천국가는 12지파입니다. 바로 이러한 왕과 다른 지파의 관계가 지도형식이라는 모형을 통해서 전달하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죄인인 것으로 의인되시는 주님과 관계맺음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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