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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중앙(겔48;8-12) 150722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5. 8. 13. 10:16

2015-07-22 20:37:12 조회 : 125         
   땅의 중앙 150722 이름 : 이근호 (IP:119.18.86.67)   

땅의 중앙(에스겔 4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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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호 15-07-22 21:18 
땅의 중앙

2015년 7월 22일                         본문 말씀: 에스겔 48:8-12

(48:8)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이만 오천 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48:9)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이라

(48:10)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일만 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일만 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48:11)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8:12)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곧 레위 지계와 연접한 땅을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지니라

이스라엘 땅에 그려진 중앙지, 이미 그 완성을 모습을 보이면서 에스겔 예언은 이제 거의 끝지점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중앙을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중앙이 따로 있다는 말은 그 외 모든 것은 변두리에 지나지 않으며, 오로지 중앙 건립을 위해서 존속해 왔다는 뜻입니다.

중앙을 위한 복무하거나 연관되지 않는 일은 이 세상에 결단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일들이 다 ‘중앙 만들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을 안다는 것은 세상 전부를 안다는 뜻입니다. 중앙만 알면 세상 모든 것을 다 하는 바가 됩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은 다 중앙에서 나오는 효과요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이는 곧 중앙이 시작과 끝의 내용을 이미 종결지었다는 말입니다. 중앙이 갖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에서 힌트가 나와 있습니다. 에덴 동산 한복판에 두 개의 상반된 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요 다른 하나는 죽음을 유발시킬 나무입니다.

따라서 이 중앙 나무의 속성에 의해서 이 세상은 끝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으로 최종 마감 정리됩니다. 영원한 생명이 천국이요 영원한 죽음은 지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작업하시는 ‘중앙 만들기’는 하늘이라는 곳에 따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 땅에서 만드십니다.

‘놀랍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흔히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여기기를 ‘천국은 저 하늘에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두 헛된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하늘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새로이 만들어져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 지상의 것은 모두 시시하고 하늘의 것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전부, 이 지상의 것을 기준으로 해서 보다 더 화려하고 멋있고 영광스럽고 깨끗한 것을 하늘의 것이라고 추가적인 관념을 덧붙여 천국으로 여기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참된 천국은, 이러한 인간들의 망상으로 인해 천시 받고 무시당하기 일 수입니다.

기존 컴퓨터의 모니터에는 화면창이 뜹니다. 그런데 만약에 컴퓨터 모니터가 더욱 발달해서 허공에, 공중에 화면 창이 이미지화 되어서 뜬다면 키판 필요없이 공중에다 대고 손을 찝고, 끌어 당기기만하면 컴퓨터 작업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처럼 예수님 오시고 난 뒤에 비로소 주어진 천국은 기존 인간들의 시간과 공간과는 따로 영적인 창이 따로 뜹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에게는 두 개의 현실판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인간이 육과 관련되어 영향을 주고 있는 기존의 시간과 공간판이요, 다른 판은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영적 판입니다. 어느 것이 참된 현실이냐 하면, 예수님이 작업하시는 그 현실판이 참된 현실판이며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예수님의 작업판에 의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실체는 예수님께서 분주하게 작업하시는 성령의 현실판입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이 나라에서 지시하는 대로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속한 자들은 마치 공무원 시험치고 ‘합격수기’를 쓰는 것처럼,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한 내력을 고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 15:10) 그동안 세상에서 이것저것 겪어야 하는 모든 것은 천국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 절차였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세상 마지막에 성령의 은혜가 오셔야 하는 겁니까? 왜 인간의 행함으로 이 천국을 건설할 수 없는 겁니까?

그 해답은 로마서 1:3-4에 나와 있습니다.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순전히 하나님의 자기 약속으로만 성립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사전에 다윗에게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약속에 의할 것같으면 ‘다윗의 자손’이 메시야로 오셔서 생명의 부활 능력과 그 효력을 자기 백성들에게 제공해서 그들만 천국에 합격되도록 하십니다. 이게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독 제사장’이 나옵니다. 사독은 다윗의 가문만이 약속된 가문으로 알고 제사장으로 봉사했던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장의 존재는 곧 다윗 가문을 통해서 약속된 메시야의 기능이 사독 제사장 기능의 완성체로 나타남과 관련 있습니다. 이는 곧 오실 왕은 제사제도를 통해서 구체화된 저주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킬 수 있는 능력자이어야 함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제사 기능이란 곧 거룩한 죽음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이 그동안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앙을 차지했습니다. 제사를 통해 언약이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가운데, 죽은 자들은 음부로 내려갑니다. 곧 일종의 화장실 같은 곳입니다. 반면에 언약대로 살았던 선지자는 성도들은 언약대로 아브라함의 품, 곧 낙원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제사 제도가 반복되는 그 중앙지점은 지옥과 천국을 유발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로서 지옥이나 천국이나 모두 언약대로 최종 정립됩니다. 그리고 그 최종 언약의 완성형태는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이를 위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인간들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 싸웠습니다. 곧 ‘전쟁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움직이신 것입니다.

그 전쟁의 효과는 죄를 지은 자기 백성을 성전 기능으로 인하여 의롭고 거룩한 백성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천국 백성은 세상 전부를 알게 됩니다. 즉 세상 모든 곳에서 죄들이 지어지게 되고, 그것이 중앙지를 감싸고 있는 제사제도에 의해서 의로 바뀌는데 이 바꾸어주시는 자격자는 마지막 때에 나타나신 다윗 자손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혜택을 입는 자들은 이 중앙성소의 혜택을 입는 땅을 가진 12지파에만 국한 됩니다. 바로 이 땅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기도합시다. 이들은 지금 시공간적으로 초월적인 영토에 속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가 주님의 부활의 영으로 이미 성전이 되어 있음을 감사합니다. 이 속에서 죄가 항상 의로 바뀌어짐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5-07-23 21:38 
148강-에스겔 48장 8-12절(땅의 중앙)150722-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48장 8-12절입니다. 구약성경 1229페이지입니다.



에스겔 48:8-12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이만 오천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찌니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척이요 광이 일만척이라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찌니 북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일만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일만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곧 레위 지계와 연접한 땅을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찌니라.”



성경에 이런 내용들이 나오면 우리 일상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들 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능력이 방금 언급한 하나님의 중앙처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마치 엔진, 자동차 엔진, 에너지가 나오는 곳, 또는 배 밑에 있는 기관실의 역할이 중앙처소입니다. 중앙처소를 하나님께서 소개하는데요, 중앙처소에서 어떤 생명의 힘이 나오고 그 힘이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는 그 사실, 그 연결 메커니즘, 그 과정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압시다. 너무 욕심이 과합니까? “얼마나 공부를 해야 세상을 다 압니까?”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경찰공무원시험을 치기 위해서 노량진역 주변에 고시학원들이 많아요. 거기에 보면 합격 수기라는 것이 있어요. 인터넷 봐도 많이 나오지요. “나는 이렇게 해서 이번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런 내용이지요. 그 합격 수기를 보게 되면, “우선 자신감을 가지고 원장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합격했습니다.” 이런 식의 내용이 나와요.



우리가 그걸 생각해 봅시다. 합격 했을 때, 합격 전 말고 합격하고 난 뒤에 자기가 시험 쳤던 책을 다시 보게 되면, 자기가 공부했던 모든 것이 오늘의 합격을 위해서 존재한다, 합격을 위해서 전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방금 제가 “오늘 우리가 세상 전부를 압시다.”라고 했는데 이 안다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고 합격한 사람만 압니다, 라는 뜻이에요. 합격 수기를 씁시다. “내가 이렇게 구원받고 보니, 이렇게 영생을 얻고 보니 그동안 내가 이 땅에 살아온 모든 것이 다 영생과 연관되어서 일어나야 했던 일을 제가 겪었습니다.” 이걸 천국에 간 합격 수기로 쓸 수 있어야 돼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바울은 이걸 간단하게 이야기했어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게 합격 수기에요. 수시로 우리는 원망하고, 자기 인생에 대해서 미워했고, 초조했고, 불안했고, 또는 낙담했고, 실망했고, 세상에 대해서 분노했고, 내 손으로 원수를 복수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합격을 하고 보니까 ‘아하, 그런 것을 겪어야만 합격이 되는구나.’라는 것을 발견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합격수기를 쓰게 되겠지요.





성령을 가지고 마지막 때의 영이라고 해요. 성령이 오게 되면 자동적으로 이 세상은 마지막인데요, 마지막 때 성령을 보내서 자기 백성을 모집합니다. 합격수기를 쓰게 하지요. 성령의 힘으로 합격 수기를 쓰게 합니다. 성령으로 쓰는 합격 수기의 특징이 뭐냐 하면, 아까 이야기한 거예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 구원 되는데 있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니? 교회도 나오고 성경도 보고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하느냐? 이 이야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제 나름대로 쉽게 한다면 이렇습니다. 보통 컴퓨터 켜면 모니터에 그림이나 글자가 나오지요. 그걸 윈도우(창)이라고 하지요. 그 창이 뜨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거냐 하면, 이제 납작한 모니터에 창이 뜨는 것이 아니고 그냥 공중에 창 띄워놓고 이미지를 손으로 만지면서 작업하는 날이 올 거예요.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많이 이미 나오지요.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이미지를 띄우도록 거예요. 영적인 이미지를 띄워버리면 나는 이 땅에서 하나의 여자, 혹은 남자로서 늙어가고 있고 고생하고 땀 흘리고 이렇게 사는데 우리의 고생하고 힘들게 사는 그것이 영적 이미지로 보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일을 시키면서, 힘들게 하시면서, 우리 몸을 뽑아서 우리 몸에서 따로 창이 나오는데 그게 공중에 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현실창이 뜨는 거예요.



우리를 투영한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창이 아니라 반대로 약속의 창을 투영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로다.” 실체가 예수님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그림자로서 이 땅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또는 어떤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너무나 구식이 되어서 구식 모니터만 들여다보면서 애를 쓰는데 사실은 성령에 의하면 우리의 손에, 우리 육적인 손에 잡히지 않는 다른 창이 뜨는 거예요. 영적 세계의 윈도우가 떠버리면 그 영적인 일을 위하여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온 겁니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 같은 경우에 풍랑이 이는 가운데 로마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데 남들 보기에는 사도바울이 고생 많이 한다고 했지만 지중해에서 풍랑을 만나든 뭘 하든 항상 그에게는 창이 뜨는 거예요. “사도바울아! 두려워 말라. 너는 로마로 가야 한다.” 이런 다른 현실 창이 있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이 영적 창, 그게 현실이고 내가 생각한 이것은 그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저기서 어떤 작업이 끝나게 되면, 예수님께서 어떤 작업을 하는데 그 작업이 끝나게 되면, 나는 이 땅에서 어디에 합류하느냐 하면, 그림자노선은 그만 청산하고 예수님의 실체에 합치되는 거예요.



그게 스데반집사입니다. 예수님의 언약이 제대로 된 현실이지만 그 언약 창에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야 되고…….” 타타타타, 치면 그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스데반 집사에게 돌이 막 날라 오는 거예요. 짱돌이 막 날라 와서 피를 흘리고 있는 거예요. 스데반 집사는 보는 거예요. 새로운 창, “내가 얼마나 맞아야 합니까?” “두 대만 더 맞아라.” 그리고는 “그 영혼이 떠나니라.” 이제는 껍데기를 버리고 실제로 그리스도와 합류하게 되는 겁니다.



세상에 이게 참 희한한 일이지요. 합격한 사람만 이런 수기를 쓸 수가 있어요. 그럼 합격 안 한 사람은 뭐냐? 지금 노량진에서 땀 흘리면서 공부하고 있지요. 모니터 들고. 성경공부를 얼마나 해야 되고, 기도를 얼마나 하고, 헌금을 얼마를 하고, 예배는, 윤리 도덕은, 자녀교육은……, 지금 열심히 거기서 공부하고 있어요. 백날 공부하면서 들여다봐야 지상에 있는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갈 뿐 아무 실체가 드러나지 않으니까 “에이, 교회 다녀도 별 소용없네.”



처음부터 우리 자신이 소용없었던 인간입니다. 소용없는 인간에다가 어떤 기대를 건다는 그 자체가 잘못이지요. ‘왜 허무하지?’ 그러다가 허무하게 죽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왜 허무하지?’ 하는데 성령이 와 버리니까 ‘아, 허무해야 되는구나.’ 세상은 헛되고 진짜 현실은 헛되지 않고.’ 두 가지 창, 지상 창은 헛된데 저쪽은 헛되지 않거든요. 헛되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그것을 가지고 “너는 이 땅에서 나그네 삶이고 하늘을 바라보라. 믿음의 세계를 바라보라.” 성경에서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합격했기 때문에 합격 수기를 쓰고 있는 거예요. 그걸 합격하지도 못한, 성령 받지도 못한 인간들이 보니까 이게 이해가 돼요? 안되지요.



오늘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 보면 8절에 보면,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찌니.”라고 했거든요. 중앙에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세상의 시작과 끝이 거기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은 중앙지점에서 나온 겁니다. 에덴동산에 보면 동산 한 가운데 중앙이 있어요. 중앙이 있다는 말은 중앙만 세운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중앙만 세운다. 중앙만 세우게 되면 그 안에서 시작과 끝이 다 나오기 때문에 주님은 하나도 손해 볼 것이 없어요.



중앙만 세우는데 그 중앙에서 뭘 만드느냐? 에덴동산의 중앙이거든요. 그 중앙이 있다는 것은 다른 것은 다 변두리라는 뜻이에요. 중앙이 있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왕이시다, 그 뜻은 “너는 변두리야.”라는 뜻입니다. “너는 중앙에 의해서 존재하는 변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중앙이 없어요. 중앙이 없으니까 자기가 중앙이 되는 겁니다. 그걸 구약에서 우상숭배라 합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어느 것이 중앙인지, 이 우주의 시작과 끝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라는 것이지요.



중앙은 숫자로 치면 하나에요. 하나뿐이에요. 하나만 허락하고 나머지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걸 에베소서 1장 10절에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고 해서 통일이란 바로 그 하나를 두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이 중앙 만들기에 있어서 중앙에서 뭐가 나오는가? 시작과 끝이 나온다고 했거든요. 그러면 끝을 생각해 봐야 돼요. 중앙에서 나오는 끝이 뭡니까, 라고 물으면 중앙에서 나오는 끝은 바로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이라 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중앙 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범죄하고 난 뒤에 생각하는 천국개념하고 완전히 달라요. 인간이 범죄하고 나서는 자기 머리위에서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땅의 중앙에서 천국이 나와요. 그러면 지옥은 어디 있느냐? 지옥은 구약에서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 음부인데 거기가 지옥이에요. 그러니까 하늘이든 땅이든 지옥이든 전부 다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땅에서 만들어져요. 땅에서 만들어진다고요.



제가 치과치료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의사선생님이 하는 말이 “지금 이가 썩고 흔들리니까 심을 심겠습니다.” 그래서 썩은 이를 갈아내고 거기에 심을 두개 심었어요. 썩은 이빨에 심지를 박았다는 말이지요. 심지를 심고 거기에 새로운 이빨을 입혀버리면 그것이 그 이빨의 새로운 중앙이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짓게 만들어서 죄 지은 그곳에 언약을 심으로 박아버려요. 언약이 박히기 위해서는 죄 지어야 하는 겁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인간이 죄 지어야 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내 살과 내 피가 새 언약이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위해서 우리는 죄 지어야 하는 거예요.



썩은 것을 파내고 거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집어넣게 되면 그게 천국이고 그 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버려져야 될 그곳이 지옥이라는 말이지요. 천국과 지옥이 전부 한 세트가 되어서 중앙을 차지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동산 한 가운데서 나무가 두개가 있어요. 하나는 생명을 이야기하는 생명나무와 하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선악과나무를 같이 심어놓은 거예요. 그 둘이 한 세트가 되어서 중앙을 구성하게 됩니다. 제가 성경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러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여러분이 만약에 하나님이라면 여러분은 중앙을 무엇으로 만들겠습니까? 우선 중앙이 되려면 방금 이야기대로 한다면 조건이 나와야 돼요. 세상의 시작과 끝이 거기서 다 나와야 돼요. 시작과 끝이 다 나오도록 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중앙의 기능이라 할 수 없거든요. 거기서 역사가 다 나와야 되고. 그 역사가 나오고 그 역사는 끝이 있어야 돼요. 역사에 끝이 없으면 중앙으로 귀환되지 않거든요. 중앙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말이지요. “사람으로서 중앙을 무엇을 삼을 것인가?”라고 물으면 사람은 내가 천국 가는 것을 중앙으로 삼아버려요.



천국 가는 나를 중앙으로 삼아버리면 어떤 잘못이 있느냐 하면,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 줘야 비로소 내가 중앙에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되거든요. 나는 안 늙어야 되고, 나는 아픈데도 없어야 되고, 모든 것이 내 말 한마디면 다 되어야 되고, 나는 편안해야 되고, 행복해야 되고. 이런 중앙은 하나님에게도 없어요. 하나님의 중앙은 자기 아들이 죽는 그것이 하나님의 중앙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나는 죽어야 된다.’ 이런 것은 중앙으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죽여서 중앙이 되게 하소서.” 이런 생각은 안하거든요. 나는 무조건 안 죽어야 되고, 나는 무조건 오래 살아야 되고, 나는 안 아파야 되고.



그런데 주님은 아팠고, 희생했고, 고난 받았잖아요. 평소에 인간들이 무심코 살아가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세상 중심이야. 이 세상 중앙, 배꼽자리(옴팔로스)에 내가 있어.’라는 무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평소에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엉터리지요. 요즘 아파트에 안방이 있잖아요. 안방에는 반드시 화장실이 있어요. 하나님도 중앙 만들면서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어요. 그 화장실이 지옥입니다. 화장실이 지옥이에요. 버려야 할 것을 거기에 버리는 거예요. 그게 땅 밑이에요. 시편에 보면 죽으면 땅 밑으로 가요. 죽은 자는 음부에 내려간다니까요. 거지 나사로에서 부자가 갔던 그 곳이 바로 음부인데 거기가 쓰레기통, 화장실이에요.



그리고 거지는 어디 갔느냐? 그 화장실이 보는 같은 안방, 낙원에, 천국에 간 겁니다. 천국과 지옥이 지상에서 만들어져서 버릴 것은 버리니까 지옥이 되고 올릴 것은 올리니까 천국 된 거예요. 그래서 천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서 만드는 겁니다. 제가 지금 몇 번 강조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라 하는 것은 훌쩍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천국이 아니고 하나님의 천국은 이 지상에서 만들어요. 그래서 하늘에 있는 천국은 우리의 망상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상에 불과하고 다 헛것이고 거짓말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만들어요.



그러면 땅에서 어떻게 만드는가? 이게 참 어려운데요.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사독이라는 사람 이름이 나옵니다. 이 사독이라는 사람, 제사장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왜 이 사람이 마지막 중앙 만들기에 그 이름이 올라가는가? 다윗 왕 때의 제사장이 사독입니다. 사독과 짝을 이루는 사람이 누구다? 다윗 왕이라고 보시면 돼요.



비로소 보여줄 수 있는 왕, 그게 다윗 왕인데 그 중앙 만드는데,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데 다윗이 왜 중요한가, 그렇게 물으신다면 로마서 1장 3절에 보면,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 갔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을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만들어요. 천국에 가신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 천국에 가시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본인의 효과로서, 본인의 십자가지신 그 능력으로서, 그 생명의 능력으로 꽉 차 있는 영역을 예수님이 부활함으로써 새로 만들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 때 뭐라고 했느냐 하면, “보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한 겁니다. 지금 제가 설명하면서도 이해가 되는지 걱정이 되어서 약간 더 설명을 하겠는데요,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전부 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이거든요. 예언자들이라고 하니 여러분이 어떤 생각 듭니까? 예언의 끝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예언했으니까, 미리 예언했으니까, ‘야,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셨으니 그 끝이 참 궁금하다.’ 궁금하지요? 다니엘, 예레미야, 이사야, 아모스, 스가랴, 전부 다 예언서라는 말이지요.



그 예언서의 끝이 어디로 모이느냐 하면, 바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고 성결의 영으로 부활되는 쪽으로 모아지게 되어 있어요. 마지막 때에, 그 모든 끝이. 공사장에 철근이 비죽비죽 나왔지요. 비죽비죽 나온 것처럼 예언서마다 하나님의 마지막 때를 겨냥해서 철근들이 비죽비죽 나와요. 그 비죽비죽 나온 철근들이 하나로 완성이 되어서 중앙이 되는데 그 중앙이 뭐냐? ‘언제냐?’도 아니고 ‘어느 곳이냐?’가 아니라 어떤 분입니다. 어떤 분. 다윗의 혈통으로 나시고 성결의 영으로 부활 되신 분으로 이미 마감이 된다고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천국이라고 하면 “어디인데요? 언제 오는데요?” 맨날 언제, 어디서,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묻는데 “그 천국이 누구신대요?” 이렇게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돼요. 천국이 누구시냐 하면, 사도바울이 만났던 주 예수 그리스도거든요. “주여, 누구십니까?”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예수님이 만들었던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덮쳐버립니다. 옴팍 덮쳐버려요. 아까 물 쏟았지요. 물이 바지를 흠뻑 적시듯이 주님의 능력이 그냥 덮쳐버려요. 그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국의 모습니다.



신랑이 너무나 대단하기 때문에 혼인잔치 하는데 신부를 꾸미기 위해서 그 신랑의 격에 맞는 신부여야 하기에 워낙 화려하게 꾸며요. 보석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자기 신부를 너무나 아름다운 색시로 만들어버려요. 신부와 같이 결혼할 신랑이 너무나 대단하신 분이기에 격에 맞도록 신부도 온갖 보석으로 꾸미게 되어 있어요. 그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에서, 천국의 영광에서 나온 겁니다. 예수도 영광 받고 신부도 같이 영광 받는 모습, 그게 요한계시록이에요.



그러데 그렇게 이어지는 데는 다니엘, 에스겔, 온갖 예언서에 나오는 ‘언약대로’, ‘약속대로’, 약속입니다. “어디인데요? 몇 시에 옵니까?” 이렇게 묻지 마세요. 언약이라니까요? 언약! 정말 이것은 합격해서 합격수기 쓰는 사람만 아는 건데. 약속입니다, 약속.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부탁했어요. 날마다 교회가 기억해야 되고, 잊지 말아야 되고, 망각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고 했던 약속이 있어요. 그게 뭐냐? “이것은 너희의 죄를 사하는 내 피고 내 몸이니.”라고 했어요. 오늘 본문에서 사독이 등장한 것은 다윗과 관련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중앙을 만드는데 다윗이 왜 동원됩니까?”라고 물으면 다윗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게 있어요. “다윗의 자손을 세워서 새로운 중앙의 나라를 만들겠다. 그것이 천국이다.”라고 그 전에 약속한 것이 있다는 말이지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바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유월절사건 있기 전에 애굽에 아홉 가지 재앙이 떨어졌어요. 애굽나라는 결국은 화장실, 죽음의 장소, 저주받은 장소입니다. 아무도 살 수 없는 사망의 곳이고 애굽은 지옥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지옥이고.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산 게 아니에요. 왜 자꾸 살았다고 하느냐 하면, 진짜 생명을 모르기 때문에 기껏 ‘숨 쉬는 것을 두고 살았다고 하자’ 자기 맘대로 스스로 정한 거예요.



실제로 산 것은 이렇게 숨 쉬는 것을 두고 살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 때만 그것을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스도의 생명은 어디 있는데요?”라고 물으면 그것은 어린양의 피에 있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어디 있는데요?” 하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있잖아요.” “누군데요?”라고 하면 예수님이라는 거예요. “예수님 지금 안 보이는데 어디 계십니까?”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내 살과 내 피를 기념하라.”고 했어요. “예수님의 살과 피가 뭔데요?” 그게 바로 십자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었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양만 잡으면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우리 대신 죽었다.” 하는데 그 말은 나보고 “너는 죽었고 죽은 너를 내가 살려낸다. 그렇게 살려냄으로서 네가 살아 있다.” 는 것을 알려주는 그 약속, 그 코드가 있어요. 그 코드가 어떤 코드냐 하면, 주님께서 모든 죽음을 훅, 하고 빨아들여서 삼켜버린 코드에요. 코드, 우리말로는 ‘약호’ 또는 ‘약속’ ‘사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제일 간단해요.



‘내가 왜 죽지? 언제까지 살지? 언제 죽지?’라고 할 때 들려오는 음성이 “나는 너의 죽음을 이미 가져갔다.”라는 음성을 들을 때 그게 코드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이 밤에 몇 시에 와서 우리 맏이를 죽이지?’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이 뭐냐 하면, “문설주에 피 발린 자는 죽지 않는다.” 이게 약속이에요. “네가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를 보고 내가 그냥 넘어가 줄게.” 하는 것처럼 지금은 그 십자가와 나와 관련 있다는 것을 믿는 자는 그냥 십자가 피를 보고 저주를 그냥 넘어가 주는 거예요.



어디서 그걸 경험하느냐? 화장실에서. 공동묘지에서. 우리의 현장이 지금 공동묘지고. 여기가 화장실이기 때문에. 여기서 경험하는 겁니다. 제 이야기는 정말 어려운 이야기에요.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그렇게 갑자기 이야기해버리면 못 알아듣잖아요.”라고 하실 때, 사독이 한 일이 뭐냐? 오늘 본문 내용이 이겁니다. 본문에 몇 척, 몇 척, 이런 단위가 나오지요. 만 척이면 길이가 12.5킬로미터거든요. 옆으로 12.5킬로, 아래쪽으로 12.5킬로, 네모반듯한 이것이 거룩한 공간이에요. 그 거룩한 공간 중앙에 성소가 있어요. 그 성소 양쪽에 뭐가 배치되어 있는가? 레위지파 땅, 제사장 땅, 그렇게 되어 있어요.



레위지파가 가로로 12.5킬로, 세로로 5킬로, 이런 땅으로 되어 있어요. 레위지파 땅, 그 밑에 제사장 땅, 그 밑에 성소, 그 위에는 유다, 저 아래쪽은 베냐민, 유다와 베냐민, 이것이 이스라엘의 허리부분인데 허리부분을 파내서 거기에 성소를 집어넣는 거예요. 제가 아까 이빨 이야기했지요. 이빨 파내고 심지를 심어놓으면 그것이 하나의 중앙이 된다고요. 새로운 이빨의 중앙이 되듯이 주님께서는 범죄한 그 이스라엘, 죄가 나오는 그 중앙 그 자리에다 새로운 성전을 심어놓아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물이 흐르면서 새 생명이 나오는 겁니다. 중앙이 그렇게 만들어져요. 그런데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레위지파나 제사장이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죽음을 계속 유발시키는 일을 해요. 그러면 그 레위지파와 제사장의 주변은 뭐냐? 그들은 계속 죄만 짓는 일을 해요. 그러면 구조가 간단하지요. 제일 바깥층은 죄만 짓고, 그리고 성소와 가까운 곳에서는 그 죄를 가져오라고 하고, 그래서 폐기처리 하는 거예요. 죄지었으면 그 죄를 가져오는 거예요. 그 죄를 가져오면 중앙에서 죄를 하나님의 의로 바꾸는 작업을 레위지파가 하고 제사장이 합니다.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 나왔기 때문에 제사장이 그 일을 합니다.



제사장이 그 일을 하는데 그 제사장 이름이 뭐다? 사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이 과연 우리의 죄를 의로 바꾸는 그만한 자격이나 권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거든요. “당신은 죄지은 우리를 무슨 자격으로 의인으로 만들어요? 의인 만들어준다고 하니 기분은 좋지만 뭔가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지 무슨 자격으로 합니까?” 할 때 그 옆에, 그 성소 옆의 땅이 뭐냐, 왕의 땅이에요. 그게 다윗의 자손 왕의 땅이에요.



다윗의 자손은 오실 때, 제사장이 해야 될 그 제물, 어린양의 기능을 온전히 다 수행하게 되면 수행한 그것이 새로운 다윗이고요, 다윗이 새로운 사독제사장에게 지시를 하게 되면, 왕이 희생했던, 왕이 완성했던 죄 용서를 이제는 제사장을 통해서 바깥으로 퍼트리는데 그 퍼트리는 방법이 뭐냐? 그리스도 죽은 것을 기념하여서 날마다 “죄를 가져 오너라. 의로 바꿔줄게. 죄를 가져오너라. 의로 바꿔줄게.” 그 작업을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엔진기능으로 움직일 때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중앙이 되는 겁니다.



제가 설교 처음 시작할 때 오늘 세상에 대해서 다 알자고 했지요? 제가 다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지금 미국의 워싱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답은 이렇습니다. 죄 짓고 있습니다. “북한은?” 죄짓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은?” 죄짓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앙은 뭡니까? 그 죄를 의로 바꾸는 작업이 와요. 그런데 이 성전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것이 열두 지파거든요. 열 두 지파라 하는 것은 그 열두 지파 외에는 이런 효과를 못 봐요. 다른 쪽은 이방인이 되어서 효과가 없어요. 그 사람들은 이미 내놓은 자식이에요. 오직 택한 백성, 열두 지파, 새로운 이스라엘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누구가 열두 지파입니까?”라고 물으면 이제는 그 다윗의 자손, 왕이지요, 다윗의 혈통으로 오셔서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신 분이 자기 백성을 놓치지 않아요. 잃어버리지 않고. 성령으로 찾아가는데요. 찾아갈 때 그냥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열 두 지파의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그게 14만 4천이에요. 요한계시록에서. 열 두 지파의 이름으로 찾아가서 온 이스라엘을 이루게 되지요. 그렇게 이루게 되면 오늘 에스겔 본문에서 합격수기, 노량진에서 쓰는 그 합격수기를 쓰게 됩니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성령 주시려고 인생을 이렇게 이끌고 오셨구나. 이렇게 와서 나로 하여금 중앙이 되게 하는 하나의 재료로 사용하는구나.’ 내 죄를 긁어내고 거기에 십자가의 하나님의 의를 박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일관된 작업을 보여주게 되면 우리가 바로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겁니다. 지금 스토리가, 이 세상의 중앙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의 중앙이 어디 있느냐? 성도가 가는 곳, “이 그리스도의 소자한테 한 그것이 나한테 한 것이다.” 그리스도 믿는 소자가 있는 곳, 어린아이가 있는 그곳이 곧 세상의 중앙입니다.



그러면 중앙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중앙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뭐냐? 배 불룩한 고물 모니터의 그 창으로 보니까 시간과 공간이 제한되어 있지요. 이 창이 성령 안에서 떠버리면 어디든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곳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새로운 이미지의 창, 영적 창이 뜨는 겁니다. 그 때는 허공에 대고 밀고 당기고 하면 다 되는 거예요. 구식 컴퓨터 두드리지 말고. 창을 당기고 밀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뭐냐? 공간과 시간을 말하지 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다. 왜냐? 그 안에서 어린양의 효과, 혜택을 입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끝으로, 그렇다면 에스겔 48장에 나오는 이 예언, 마지막 예언이 긴 철근처럼 죽 이어져서 마지막으로 노리는 것이 있어요. 죽죽 가다가 어디서 만나는가? 이 비어져 나오는 예언의 철근, 이 에스겔 48장이 마지막입니다. 이 비어져 나온 철근 부분을 우리가 하고 있어요. 다음 주가 되면 이 에스겔이 끝나는데 다음에는 뭘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또 그 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에스겔 예언의 마지막 대목이 세상 중앙을 겨냥하는 거예요. 마지막이 되면 중앙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이 중앙에 대해서 에스겔에 나오는 그 철근이 옛날 구약 식으로 설명하는 거예요. 이것이 신약에 오게 되면 이제는 구약식의 용어가 아니라 신약적인 영적인 용어로 바뀌어서 이 에스겔을 완성합니다. 그것이 아까 제가 말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왜 성전인가? 우리가 죄인이기에 가능해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우습게 보지요?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안에 누가 있는가? 레위 인이 있고 레위인 옆에 제사장이 있고 제사장 옆에 왕이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옛날 에스겔 방식과 똑같이 왕으로 좌정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의로 바꾸는 겁니다. 그러면 죄를 의로 바꿀 때 어떻게 바꿉니까? 이거 알려드려야 돼요. 이거 놓치면 안 됩니다. 어떻게 바꾸는가? 전쟁으로 바꿔요. 전쟁으로. 그래서 왕의 특징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전쟁하는 하나님이에요. 전쟁하는데 누구하고 하는가? 창이 떴으니까 마귀하고 전쟁해요. 우리는 그냥 구식 컴퓨터만 두드려대면서 만날 내가 미워하는 것, 나한테 사기 친 것, 이런 싸움만 하는데 그런 육적인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을 하셔서 죄에 물들어서 죄에 포로가 된 우리를 이제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의를 집어넣어서, 이제는 내 백성이라는 것을 증거 해서 예수님 본인 자랑하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당당하게 “죄인이었는데 의인되었다.”고 우리보고 외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것은 주님의 전쟁의 소산물이기 때문에 이 가치는 우리가 그냥 공짜로 얻었다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전쟁해서 피 흘려서 승리해서 따 낸 거예요. 승리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의인 된 거예요. 승리를 이미 하셨기 때문에. 따라서 의인 ‘될’ 거라고 말하지 마세요. 죄지어도 “이미 의인이야.”라고 함으로서 우리의 자존심이 아니라 우리를 이렇게 만드신 주님의 자존심이 우리보다 앞서 나올 때 그 사람은 합격수기를 쓸 수 있는 자격자 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의 중앙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죄인인 것이 분명한데 주님의 제사기능 때문에, 십자가 지신 그 희생제물 기능 때문에, 그게 헛되지 않아서 저희들이 의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증거 하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