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주체와 나타난 주체가 인간은 달라요.
나는 누구다고 이야기 하는 그 속에는 내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말만 했을 뿐이고.
남한테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요소를 끄집어냈을 뿐이지.
그 안에 말해진, 상대방이 이해하는 그 속에는 나는 없어요.
그러니까 나는 나를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표현하는 방법이 없는데도 뭔가 나를 설명할 때,
그게 우상 적인 제 2의 내가 돼버려요.
인간은 자기의 말에 자기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속에서 자기 아들을 담아서
비로소 말씀 속에서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마라한 언술주체, 말하는 주체,
주체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 선악과 주체에 대한, 죽음이라는 그 결과가 어떤 죽음입니까? 하는 그것도
하나님이 자기 말씀대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그 죽음을 통해서
진짜 죄의 정체와 죽음을 그 십자가에서만 증거케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다른 진리가 없어요.
왜, 다른 진리는 전부다 인간이 상상하는 우상 적인 체험을 두고 이야기하거든요.
뭐 짜릿했다. 놀라웠다. 기도했는데 암에서 나았다.
뭐 기도하니 갑자기 집안에 운이 트이고 공부 성적이 올라가고
안 되던 취직이 되고 뭐 어떻고 저떻고 했다.
그러나 욥이 말한 체험은 그런 체험이 아닙니다.
욥이 말한 체험은 항상 이거에요. “왜 이래요? 이게 뭐에요?” 이거였지.
그러나 욥의 친구는 말하기를 뭐라 합니까?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거 뭐 최초의 다단계에요.
최초의 다단계에요. 욥의 친구가.
모든 인간은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 그게 복음의 시작입니다.
-우리교회 주일오후설교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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