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미리 제가 해답을 제시해드리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 16, 18절 거기 보면 나와요.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가 뭐죠? 모든 일이죠. 모든 일에 감사가 나와야 된다. 이걸 사도 바울은 선(善)이라 했어요. 선악과가 아니고 은혜로 주신, 은사로 주신 선이 뭐냐? 감사에요, 감사. 찬양이고 감사에요.
그래서 감사에서 눈 돌아가면 뭐가 나오겠어요? 선악이 나오죠. 감사에서 눈 돌아가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감사를 주시되 이 감사가 어디를 경유해서 나오게 합니까? 자기 선악에 미쳐서 완전히 미쳐 돌아갈 때에 주께서 예수님의 탕감, 예수님의 죄 용서와 은혜를 줘버리면 인간은 순간입니다, 우연입니다, 순간적으로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느냐? 주께서 거저 주신 은혜가 많은데!’
나는 왜 이 게임에서 이겨야 되고 지면 안 되고, 나는 이렇게 되어야 되고 저렇게 되어야 되고, 나는 이렇게 훌륭해야 되고 이렇게 나쁜 짓하면 안 되고, 이걸 따지고 있다는 이것이 악마의 술책에 옴팍 빠져 들어간 거예요. 아, 이것은 내가 정말 죽을 때까지 강조해도 모자라요. 이런 문장으로 해볼게요.
‘이미 천국에 있는 사람만, 성령 안에 사는 사람만 말씀을 진지하게 본다.’
같은 말로, ‘이미 지옥에서 벗어난 사람만 자기와 그리고 세상을 시시하게 본다.’
같은 말로, ‘이미 지옥에 가는 사람만 자기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매 순간 우리는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해요. ‘참, 내가 그 말 하는 게 아닌데. 그 사람한테 그런 말한 건 내 실수인데, 사과할까, 말까?’ 왜 갑자기 진지해졌어요? 뭐가 진지해졌어요? 자기의 말과 행위가 아주 좋은 말로 호환돼요. ‘내가 그 사람을 배려해야지. 양심이 있다면.’ 이게 뭐에요? 이게 천국 가는 모습입니까, 지옥 가는 모습입니까? 지옥 가는 모습이에요. 지옥 가는 모습이라고요.
‘그 사람이 나하고 느지막이 결혼했는데… 아휴, 복음 전하는 걸 방해하네. 그래도 남자가 되어가지고는 내가 끝까지 보살펴줘야지.’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집사님? 지금 갑자기 누가 진지해졌어요? 주님의 십자가고 피 흘림이고 다 날아가 버리고 본인에게 굉장히 진지해진 거예요. 지금 자기 걱정하고 있어요, 자기 걱정을.
복음 하다가 갑자기 인도철학 되어버렸어요. 여기서 내가 뭔가 착한 일을 추가해야 돼. 왜? 착한 일의 영향력은 계속 유효하니까. 업보라는 말은 불교용어니까 함부로 안 쓰겠지만. 지금 6페이지까지인데 접어요! 할 것도 없어요! 내가 왜 이렇게 세게 쳤을까? 또 진지해지려 하는지….
진짜 아시겠습니까? 정말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회까닥 하는지. 말씀은 주께서 이루시고, 그 말씀은 완성된 입장에서 우리를 지적해줍니다. 너는 한 번도 간음 안 해본 적이 없고, 너는 항상 너만 생각하고, 너는 죄 안 지은 적이 없다 할 때, 범사에 찬양과 감사와 기쁨이 나오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게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잊지 말기!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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