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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존의 이유

아빠와 함께 2026. 5. 26. 05:45

예언이 빠진 현실 이해는, 인간의 존재 이유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언은 예언대로 살리면서 성취되는 현실은 이스라엘 왕의 몫입니다. 이 역할을 완수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즉 희생의 잔을 마신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 저주의 잔의 효과를 제공합니다. 그 잔이 제공된 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유일한 목자로 알아먹는 양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데서 비로소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발생된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하나님의 말씀의 밑밥이 깔리고 그 위에 현실이 예언대로 진척되는 거예요. 이게 엘리사의 견해예요.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해요.  
"너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 네게 먹이신  사람 떡으로만   아니요 여호와 입에서 나오 모든 말씀으로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매일 같이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이 함께하는 생명의 유일한 민족이라는 거예요.
‘네가 떡을 먹고 살았다는 그 생각 자체를 제거하고 말씀이 말씀 되기 위해서,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너를 그동안 살려왔다’라는 그것을 겨냥하면서 주께서 말씀을 주신 거예요.
‘나중에 너희들이 가게 될 영원한 지옥에 비하면 너희들이 자식 잡아먹는 이런 것,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참극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게 무슨 대수냐? 더 엄청난 게 기다리고 있다.  
우상을 섬길 때 나타나는 현상을 미리 앞당겨서 이스라엘 나라 역사에 남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를 남긴 이 성경책이 오늘날 꾸준히 현실로 계속 형성되게 했습니다.  

첫 번째, 현실 속에 살려고 하지 마라.  
두 번째, 현실을 삼켜라. 현실을 아예 먹어버려라. 현실 전체가 네 안에 들어오도록 해라. 어떻게? 말씀을 먹으면 되잖아요. 왜? 이스라엘에서의 현실은 말씀에 입각해서 현실이 예언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선지자가 갖고 있던 의미고, 그 선지자의 의미가 확산되는 것이 진짜 이스라엘의 참모습이에요.
세 번째, 삼켜서 그것을 또 실천에 옮긴다든지 그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 말씀이 스스로 완성된 그 효과와 효능을 마셔라,  

 

언약도 없고, 말씀도 없고, 예언도 없고, ‘내 몸뚱아리 하나 챙기면 오케이다’라는 그것,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리고 이방 민족을 통해서 ‘그게 바로 죄’라는 거예요.
죄라는 것은 ‘죄를 이길 수 있다’가 아니라, ‘이길 수 없다’를 전제로 해서 그걸 죄인이라고 이야기해 줘요. 말씀 공부한다고 그게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요. 말씀을 공부한다는 것은, 전에는 현실 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말씀 자체가 현실을 구성하기 때문에, 앞으로 될 어떤 현실도 그것을 말씀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거예요.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위해서 죽으신 거예요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 네게 먹이신  사람 떡으로만   아니요 여호와 입에서 나오 모든 말씀으로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분이 먼저 희생하셨고 그 희생이 종결된 희생이에요. 그래서 나의 어떤 가치와 의미를 다 제끼고, 오직 그 희생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사는 이유를 그 희생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 그게 바로 속죄의 효과를 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다음에 성령을 보내서 ‘주께서 이미 다 이루었다’ 하는, 속죄가 이루어진 그 ‘희생’에 참여케 하시는 거예요. 성령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그 성령의 효과가 이제는 예수님뿐만 아니고 양이 될 사람, 양이 되어서 목자와 함께 영원한 천국에 갈 사람에게도 성령이 동일하게 효과가 오는데 그 효과의 원천이 뭐냐?
예수님께서 혼자서, 그 모든 속죄함의 희생 그 모든 것을 혼자서 다 이루었다는 거예요.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 왕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기르시는 백성이고. 이 말씀에서 인간이 사는 이유에 대해서 본인이 결정하고 선택한다는 이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희생에 참여한 주님으로부터 의미와 내 생존의 이유가 나와야 하는데, 내가 ‘여기 있음’이 내 생존의 이유가 되고 의미가 돼버렸던 거예요. 그래서 맨날 뭐가 나오냐? 맨날 죄만 나오는 거예요.
그 죄를 죄라고 아는 것은 이미 예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을 먹어서 영생을 주와 함께, 영역을 주와 함께 공유했기 때문에 ‘아, 주께서 희생한 그 죄, 지금도 나에게서,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런 죄가 나온다’라는 것을 알 때, 여러분 얼마나 기쁘게요? 얼마나 기쁩니까! 비로소 우리는 존재 이유와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죠. 죄만 지을 수밖에 없으니까 ‘룰루랄라’고, 신바람 기쁘죠.
로마서 8장, 장소를 잘 생각해요, 장소, 어느 ‘장소’인지? 8장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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