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고르반

아빠와 함께 2026. 5. 23. 10:58

마가복음 7장 11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에는 ‘고르반’ 이야기가 안 나와요. 고르반(Korban, קָרְבָּן)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 이게 뭐라고요? 장로들이 이 고르반이라는 전통에 의지해서 ‘나는 당신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라고 근거를 제시하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요. ‘부모를 공경하라’ 할 때,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말씀을 믿으면 이것이 곧 부모를 공경한 게 된다는 거예요.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돈이 있다면, 이 돈은 부모를 공경하는 그 말씀이 잘 되기 위해서 협조하는 의미로 내가 하나님께 헌금, 돈을 낸다면 그게 고르반이에요. 이 돈은 하나님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말씀을 위해서 바쳐지는 돈이다. 그러면 그 돈을 하나님께 어떻게 바치느냐? 일단 바쳤다는 것을 믿고 그 돈을 누가 사용하느냐? 내가 사용하는 거예요. ‘내가 사용한다면 이것은 부모한테 현찰 안 내도 이미 하나님께 헌물을 바친 게 되고, 다만 사유권은 아직 나한테 유효하다.’라는 식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실천에 옮겼다는 식으로, 전통적으로 그런 식으로 해석해왔던 거예요.

여기서 그런 전통, 그런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이 누굴 죽였다 했어요? 예수님을 죽였죠. 그런데 이제 어려워요. 너희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이런 식으로 지켰다는 것으로 왜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지적하는 겁니까? 왜 말을 하는 거예요?

말에는 그 인간을 때려 부수는 망치가 달린 거죠. 지적을 하는 것은 ‘자백할래, 내가 수사 들어갈까?’하는 원칙과 똑같은 거예요. “너희들의 주장을 내가 그대로 이야기했다. 자,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고 그것은 계명을 해석한 그냥 전통이다. 그런 말을 하는 나를, 너희들 나를 어떻게 처리할래? 뭐? 죽일 거야? 내가 죽어줄게. 죽여줄게.”

그렇게 나올 때, 만약에 여러분들이 장로고 서기관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아, 예수님이 오시는 이유는 우리 인간들에게 핍박을 받아서 우리 인간들의 자기 잘난 체 때문에 죽으시러 오셨구나.’ 하는 것을 간파하면 되죠. 십자가란 사건을 결과적으로 볼 때 그게 정답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이야기할 때 장로들은 쑥덕쑥덕 모의해서 ‘저 인간 언제 죽일까?’ 이렇게 했죠.

이게 뭐냐 하면, 십계명에 있는 ‘부모를 공경하라’를 바리새인들은 자기에게로 돌렸잖아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말씀을, 방향 바꿔 틀어서 누구에게로 가져옵니까? 요한복음 5장 39절, 모든 말씀은 누구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내게(예수님) 대해서 증거하죠.

그러면 그 말씀이 예수님께 올 때는 예수님은 십자가 져야 요한복음 19장 30절, “다 이루었다”가 성립되는데, 인간들은 예수님 빼놓고 인간에게 나오고 있는 철두철미한 해석집, 전통을 고수하면 이게 율법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받을 자신감이 넘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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