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비밀 보관함
대전-십자가를 아십니까(37강) 눅12:49(비밀 보관함)20250526b(강의: 이근호 목사)
오늘 강의로서『십자가를 아십니까』를 다 끝내겠습니다. 오늘 강의는 마지막에 [십자가와 전도]라는 제7강을 하겠습니다. p.184 밑에서 8번째 줄 보겠습니다. [민중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 인물에게는 로마 군대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는 무슨 능력 같은 게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폭풍을 진압하셨고 귀신을 축출하셨고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셨고 가시는 곳마다 병에 들린 사람들을 온전케 하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전도가 시작됐죠. 전도가 시작됐을 때 전도가 뭐냐?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아를 선두로 해서 뒤에 후폭풍이 오는 것처럼 끌고 오시는 걸로 생각하는 겁니다. ‘우선 왕이 먼저 등장하고 그다음에 왕의 나라가 수립된다.’ 이것이 유대민족들이 알고 있던 구약 해석의 일종이죠.
그럼 그 메시아적인 왕이 왔을 때는 인간의 기본 능력을 능가하는 대단한 능력가지고 깜짝 놀랄만한 기적들을 베풀면서 메시아가 온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폭풍을 진압했고 귀신을 쫓아냈고 죽은 자를 살리고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를 온전케 했다는 소문이 들렸죠. 그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겁니다.
마태복음 9장 18절을 잠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한 직원이 와서 요청한 게 “내 딸이 죽었습니다. 죽은 딸은 그냥 못 살고 주님의 손을 얹으시면 내 죽은 딸이 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초빙하는 그 가운데 예수님도 가시고 제자들도 같이 가는데 20절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그다음 24절부터 회당장의 딸이 죽은 게 아니고 자고 있다 하시고 손 잡으니까 살아났다 하고 그 소문이 퍼졌다고 되어 있죠. 예수님께서 이 일, 12년 동안 혈루병 앓은 여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왜 살립니까? 왜 살리냐 이 말이죠. 살리는 이유가 뭐냐? 지금 예수님께서 전도하신 거예요?
전도라는 것은 주님이 갖고 있는 능력이 저쪽에 전달되는 게 전도거든요. 주님 갖고 있는 능력이 저쪽으로 전달될 때, 그다음에 전달받은 그 힘을 가지고 다시 자신이 멀쩡하게 된 새로운 나로 그냥 있어버리면 능력은 도달했는데 주님의 도(道)는 저 사람에게까지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주님의 도는 능력 받았으면 그 능력에 의해서 주님 쪽으로 끌려 들어와야 돼요. 합류해야 돼요. 마치 사막에 구멍이 있는데 거기 개미 빠지면 개미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더 이상 나라는 것은 따로 만들 수 없고 점점 빨려 들어가서 주님의 몸 안에 합류되는 것, 이것까지 전도가 되는 겁니다.
전도라 하는 것은 주님의 능력을 전해서 그 능력에 이끌려서 주님 몸 안에 합류되는 거예요. 이게 전도인데 주님의 능력이 그럼 꼭 아파야 전해져요? 딸이 죽어야 되고 12년 동안 꼭 아파야 돼요? 멀쩡하고 딸 안 죽었으면 그럼 그 사람은 전도 받을 기회조차 없이 되잖아요. 그렇게 되죠.
그럼 능력이라는 것, 주님의 모든 전도의 능력은 동일한 능력이 들어와야 돼요. 교재에 나온 것처럼 폭풍을 잠잠케 한다, 귀신이 나갔다, 병든 자를 고친다, 이런 능력이 우리 보기에는 다 다르잖아요. 이걸 하나로 이야기합니다. ‘자유케 한다’고 해요. 자유케 했다는 말은 ‘풀려 나왔다’는 거예요. 인간은 족쇄에 갇혀 있는데 풀려 나왔다. 자유케 되었다.
몸이 아프든 건강하든 또는 귀신 들렸든 죽었든 관계없이 똑같은 것으로 묶는다면 자유케 되었다는 겁니다. 자유케 되었다면 이 자유는 ‘어디로부터 자유냐?’, ‘어디를 향한 자유냐?’ 이 두 가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폭풍을 잠잠케 하고 하는 일들이 지금 예수님께서 어느 한 쪽으로 가고 있는 도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계속해서 도중에 일어나고 이러한 능력은 열두 제자를 뽑아서 열두 제자에게도 동일하게 그런 능력을 줘서 전도를 하는데 이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럼 능력을 받았으니까 사람들이 따라오겠죠. 한 무리지어 따라오면서 예수님이 도착하는 곳까지 같이 들어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따라오던 사람들이 도중에 다 가버렸어요. 열두 제자부터 해서 십자가까지 따라온 사람은 없고 강제 조치된 강도 둘이 따라왔는데 강도 하나도 끝까지 탈락하고 한 사람은 건졌죠.
쭉 따라오면서 네가 속해있는 곳으로부터 자유케 한다, 자유케 한다, 자유케 한다 라고 하면서 쭉 따라오다가 결국 남는 것은 예수님 홀로 남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의 전도는 실패했느냐? p.187 보겠습니다. 위에서 2번째 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이렇게 되어 있죠.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께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왔을 때 그 찾아온 인간들이 뭘 생각 못하느냐 하면 내가 기본적으로 악마한테 매여 있다는 생각을 그 누구도 아무도 안 했어요. 우리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또는 내가 이렇게 병들었습니다. 전부다 누구 이야기냐 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자유를 이야기하니까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걸 자유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진짜 자유는 ‘나도 모르는 채 나를 꽉 잡고 있던 악마의 실체, 그 존재가 나한테 발각당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케 되었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나는 그동안 악마한테 지배받고 살았구나.’ 그러한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우리는 악마와 바이바이할 수 있는 경계선에 선 거예요.
“너였어? 네가 그동안 나를 이렇게 꼼짝 마라 했어?”라고 악마를 보고 그런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지점까지 주께서 잡아당기는 겁니다. 그런데 방금 이야기했던 열두 제자도 자기가 홀로라고 생각했지, 마귀가 자기를 통제한다는 생각을 베드로가 해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도, 끄집어내는 능력은 예수님만 할 수 있는 능력이고 다른 어떤 인간도 스스로 악마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것도 안돼요. ‘악마로부터 벗어나게 하옵소서.’ 이것도 안돼요. 네가 뭐 악마를 알아? 모가지 막 돌아가고 그게 악마인 줄 알아? 상투스 상투스 라틴어 쓰면 뭐 이상하게 게거품 무는 게 악마가 아니야.
멀쩡한 사람 저 아비가 악마야. 정신병 이런 거 말고 아픈 사람 말고 멀쩡한 사람, 허우대가 좋은 사람 그런 사람들의 배후에 악마가 작용하고 있단 말이죠. “저는 우리 아버지 너무 존경해요.” “너희 아버지가 마귀에 속해 있는데?” “저 우리 어머니 너무 사랑해요. 저한테 너무 잘해주고요. 그 고생하면서 우리를 이렇게 공부시키고 키워줬어요.” “엄마가 마귀하고 함께 있는데? 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자유인 줄 모르는구나.”
p.187 위에서 6번째 줄에 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지르기 위하여 오셨다(눅 12:49).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마 10:34)고 하셨다.] 불 지르러 왔다는 거예요. 경상도 말로 디비뿌린다(뒤집어버린다)고 하죠. 완전히 뒤집어버려서 세상 배후에 어떤 세력이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겁니다.
그럼 그동안 예수님께서 “소녀야, 일어나라.”하는 말을, 다시 예수님 끝부분에 와서 문장을 길게 붙여야 돼요. “마귀야, 그 여자 좀 놔줘라. 네가 12년 동안 붙들고 있던 그 병에서 좀 놔줘라. 주가 이야기한다. 마귀야, 병에서 놔주고 너는 꺼져라.” “어디로 갈까요?” “돼지한테 가든지 소한테 가든지 삼겹살 되든지 닭 속에 들어가든지 가버려라.”
그러니까 주님은 인간하고 상대한 적이 없고 누구하고 상대했습니까? 마귀하고 상대했어요. 그게 바로 둘째 하늘이에요. 여기서 에스겔에 나오는 1장과 10장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에스겔 1장과 10장에 보면 천사의 얼굴이 나와요. 천사의 모습이 나와요.
에스겔 1장에서는, 앞에서는 사람 얼굴, 오른쪽은 사자 얼굴, 왼쪽은 소 얼굴, 뒤쪽은 독수리 얼굴 이렇게 되어 있어요(10절). 이게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이 이런 모습으로 보인다는 말은 셋째 하늘에 있을 천사들이 둘째 하늘을 경유해서 지금 멸망해야 될 이스라엘까지 방문하면서 이런 모양들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거예요.
앞, 오른쪽, 왼쪽, 뒤니까 이것은 정육면체, 사각형 모습으로 나오죠. 앞, 뒤, 왼쪽, 오른쪽 사각형 모습. 사각형 모습이라 하는 것은 셋째 하늘, 둘째 하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사각형 안에 갇혀 있다는 말이에요. 사각형 안에 갇혀 있다. 네 명의 천사로도 충분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맡긴 일을 수행하는데 네 명의 천사로도 충분히 그걸 감당할 수 있어요.
그런데 천사가 어디를 향하여 내려오느냐 하면 성전 있는 쪽으로 내려오거든요. 이 말은 천사가 갖고 있는 진짜 성전과 그리고 이제는 파기되어야 될, 더 이상 성전 기능을 못하게 된, 성전에 우상을 만들어놨으니까 성전 기능이 당연히 취소되어야 되겠죠, 취소되어야 될 그 장소를 향하여 에스겔 10장에 보면 이 보좌가 성전을 찾게 됩니다. 이것(파기되어야 될 성전) 아니고 이것(진짜 성전)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네 천사가 뭔가 폭탄을 품고 있어요. 그 폭탄이 1장에도 나오고 10장에도 나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숯불이에요. 제단에서 나오는 제단 불. 불 없는 성전은 없어요. 불을 투하하는 거예요, 투하. 불을 세상에 투하하는 기능이 네 그룹들이에요. 그룹이라 할 수 있어요.
에스겔 10장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에스겔 10장에는 첫째 면, 둘째 면, 셋째 면, 넷째 면이라 해서 사각형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게 아니고 순서를 보여줘요(14절). 각자 순서를 보여주는데 보이는 순서를 큐브 돌리듯이 보여주는 거예요. 첫째 면이 그룹, 천사에요. 천사인데 무슨 천사냐 하면 두루 도는 화염검, 불칼을 들고 있는 천사에요. 창세기 3장 24절. 이들의 기능은 확실합니다. 생명나무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 보호 아닙니다. 인간 보호라는 게 없어요, 성경에. 어제 낮에도 이야기했지만 주님 보호지 나 보호 아니에요. 듣는 인간들 섭섭하겠지만. 사랑의 하나님, 인간 사랑 그런 건 없어요. 주님 사랑뿐이에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끝났어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우리는요?” “너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태복음 17장 5절에.
너는 그의 말을 들어야 되고 복속되어야 되지, 따로 나 사랑해달라는 이것은 성립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이냐, 첫째 아담이냐 둘 중에 하나밖에 없어요. 마지막 아담은 아벨 계통이에요. 첫째 아담 계통은 가인 계통이죠.
재밌는 것은 여자의 후손은 남자고요. 모든 여자는 남자의 후손이에요. 중간에 뭐가 빠졌습니까? 모든 여자는 남자의 후손이고 여자의 후손은 한 아들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 둘 사이는 전쟁으로 싸운다는 거예요. 어느 것이 최후에 남을 자냐, 싸워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땅에 거기서 뭐가 없냐 물으면 아들 낳은 여자가 없죠. 여자가 없는 존재입니다. 여자의 후손인데 여자가 없습니다. 모든 여자는 뱀의 후손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딸을 낳았기 때문에 여자가 없는 거예요. 없는 여자를 뒤늦게 아들이 먼저 생기고 아들 다음에 그 아들을 낳았다고 여기는 여자, 교회를 아들이 만들죠. 후손이 선조를 만들어버리죠.
왜 만드는가? 교회를 위한 게 없어요. 예수님을 위한, 예수님을 보호하는 교회로 보조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지, 교회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보호하는 그것이 교회고 다른 교회는 존재하지 않아요. 첫째 하늘에서 인간은 가치도 없어요. 위에서 셋째 하늘을 뚫고 내려온 것과 인간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가치가 발생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가치가 삽입되어야 그게 인간이죠. 그 외에는 인간이 아니에요.
아까 p.187에 내가 이 땅에 불 지르러 왔다고 했죠. 천사의 기능이 하나님 이름을 잇는 성전을 불태우기 위해서 왔어요. 자, 성전 불태웠다. 뭐가 불타야 돼요? 이스라엘 불타야 되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시기 위한 민족인데 성전이 없어지면 그 나라는 자연적으로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이건 46년 간 지었습니다.” 할 때 “전부다 헐어버려라. 내가 사흘 만에 짓겠다.” 한 것도 주님께서 하늘나라 아버지와 통하는 성전, 주의 이름과 통하는 성전을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지 기존 성전은 소용없어요.
어쨌든 간에 첫째 면은 그룹이고 둘째 면은 사람 모습이고 셋째가 사자 모습이고 넷째가 독수리 모습이에요. 뭐가 빠졌어요? 소가 없어요. 10장에서는 소가 없고 독수리, 사람, 사자, 그다음에 천사들 이렇게 나타납니다. 천사의 기능을 먼저 그룹이 실시하고 사람 닮은 천사가 그 그룹의 지시대로 따르고 그다음에 사자도 따르고 독수리도 따르고.
이 독수리, 사자 이 기능은 나중에 스가랴 같은 데를 보게 되면 수직적으로 내려왔던 것이 수평적으로 퍼져요. 퍼져버리면 정육면체가 그냥 사각형 돼요. 평평한 2차원 가로, 세로만 있는 면적이 돼요. 사각형 면적 구석구석에 천사들이 후티 반군 폭파하듯이 모든 것을 작살내버립니다. 박살내요.
그게 요한계시록에 나오죠. 처음에는 삼분의 일을 작살내고(계 8:7-13) 나중에 나머지 삼분의 이에도 일곱 대접을 쏟아 붓죠(계 16장). 대접을 붓는다는 것은 말릴 수 없이 쏟아진다는 거예요, 소낙비 오듯이. 그걸 누가 말려요? 못 말립니다. 그냥 쏟아지게 되어 있어요. 멸망되기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쏟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성경이야기가 굉장히 낯설 게 느껴지고 현실감이 뚝 떨어지게, 현실적이지 않고 그냥 엄포, 또는 그냥 협박조로 우리가 느껴지죠. 왜? 첫째 하늘 아래서는 모든 게 평온하니까. 평온하니까요. 시끄러운 쪽은 대선한다고 하는 저쪽만 시끄럽고 나머지는 아무 문제없이 평온하다 이 말이죠. 자영업자 죽는다는 그런 이야기, 물가 올라간다는 그런 이야기, 뭐 여러 가지, 개인 중소기업에는 외국인들 자꾸 빠져나간다는 그런 이야기 있지만 대체로 평온합니다. 이런 성경이야기, 에스겔 10장 이야기가 자기한테 와 닿질 않습니다. 와 닿지 않는 이유가 뭐냐? 메시아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메시아의 능력이.
에스겔 1장의 보좌 안에는 뭐가 있느냐? 아까 이야기했죠. 폭탄 같은 숯불을 담고 터트릴 장소만 찾고 있는 거예요. 한꺼번에 움직여요. 한꺼번에 쫙쫙 움직여서 투하, 움직여서 투하, 투하. 우선 성전 불태우고 그다음에 성전 불타고 난 뒤에는 수직적으로 측정된 세상이 사각형 평면으로 바뀌면서 모든 지역이 폭탄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이 취지가 어디서 나온 취지냐 하면, 첫째 강의에서도 했지만 ‘유월절 그날 밤의 재현’이에요. 유월절 그날 밤의 재현. 모두 잠자고 있을 때, 내가 처해있는 이 세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처벌 받는지를 아무도 모르는 그날 밤에 일방적으로 단 하나의 약속, “어린 양 피 발라라.” 속삭이는 거예요.
“어린 양 피 발라. 피 발랐어, 안 발랐어? 네 피 말고 어린 양 피 발라! 네 피는 소용없대. 어린 양 피 발라. 양 수가 모자라거든 한 마리에 여러 명 합쳐서 나머지 피 바르라고 해.” “왜 그래야 되는데요?” “천사가 피만 보고 그냥 묵인하고 넘어간대. 피만 보고 넘어간대.”라는 그런 소식이 애굽에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퍼졌을 때, 그들은 왜 어린 양의 피인지, 왜 이 밤중에 오는지, 왜 이 평온하고 멀쩡한 애굽 나라가 작살나고 벌을 받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아는 사람이.
알기는 유월절 본인만 알고 유월절 양의 피만 보고 넘어가는 그 천사만 알고 나머지는 몰라요. 천사만 아는 내용, 아무 인간도 모를 때 이 천사의 기능에 메시아가 합류함으로서 메시아는 알고 메시아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그 일이 전도입니다. 전도. 이게 전도에요.
심지어 열두 제자도 전도하면서 왜 그래야 되는지를 본인도 몰랐어요. “본인도 몰랐지만 성령 받고 난 뒤에 그들이 전도한 건 맞잖아요.” 아닙니다. 성령 받고 난 뒤에 사도행전에서 어느 제자도 전도한 적이 없어요. 성령이 하셨지요. 자기 마음대로 못 가요. 사도 바울이 터키 쪽으로 가려다가 강제로 아시아 쪽으로 넘어갔어요. 성령이 말렸어요. 말린 거예요.
다니엘에 보면 미가엘 천사가 전쟁에서 바사 군주가 침범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와요(단 10:13, 20-21). 그래서 다니엘도 너무 혼줄 나서 며칠 아팠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10:15-16). 제 말은 이런 거예요. 이 세상 모든 일에 이스라엘이 무능하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취소되거나 전도가 중지되지 않고 누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했어요? 천사들이 와서 이렇게 채우는 거예요.
천사는 특히 융통성이 없어요. 봐주기가 없어요. 저 집은 누구 앤데 이런 것도 없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와서 폭탄 투하하고 불 질러버리는 겁니다. 이 천사의 마음을 그대로 예수님이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해서 봐주기 없어요. 진멸해버려요.
하지만 예수님 안에 천사와 다른 점은 자비를 베풀 자에 대한, 특별히 따로 구분된 택한 백성에 대한 자비가 구약성경 시편에 여러 군데 나오잖아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원래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구원한다는 그 마음도 예수님께는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도라 하는 것은 자기 사람 찾아 나서기. ‘잃어버린 자기 사람 찾아 나서기’라고 보면 됩니다. 어제 오전 설교에서 했듯이 택시에 ‘예약’해놓고 뒤에 전화번호 나오는 것처럼 십자가 사건 속에 있는 사람만 찾아 나서는 거예요. 교회 다닌다고 찾아가는 게 아닙니다. 천사가 십자가 사건 속에 있는 사람을 찾는 거예요. 천사가 주님이 시키는 대로 일하기 때문에요.
가브리엘 천사 같은 경우 누구한테 찾아갑니까? 마리아한테 찾아가죠(눅 1:26-27). 특히 사도행전에 보면 천사들이 사도들 가는 곳에 가서 옥문을 막 열어주고 하잖아요. 이런 천사들의 활동이 되어버리면, 두 번째 하늘나라가 아래층으로 구멍 났다. 터져 버렸다. 펑크가 난 거예요.
지붕이 노후 돼서 구멍 뚫리니까 위층에 있던 내용물이 아래쪽으로 떨어졌죠. 위층에 누가 있었냐 하면 악마가 있잖아요. 악마가 있는데 전쟁하려면 악마만 있는 게 아니고 누가 있어요? 천사들도 있죠. 천사와 악마가 아래층에서 후반전 싸움을 벌인 거예요.
사실 천사는 주님에 의해 택한 백성을 건지기 때문에 건지는 데에 지장이 없는데 악마는 베드로전서 5장에 보면 우는 사자와 같이 택한 백성을 데려가려고 발악하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0절에 보면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잠깐 고난 받지만 그것은 잠깐이다. 모든 권력, 힘은 그분에게 있다는 이런 이야기도 있고 로마서 8장에도 지금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죠(18절).
그래서 이 첫째 하늘 판이 개판이 아니고 악마와 누구와 싸운다? 지킬 자를 지키는 수호천사와 그 수호천사를 노리고 이미 택했는데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집적거리면서 악마가 테스트하고 시험 걸죠. 심지어 악마는요, 예수님한테도 덤벼들었어요.
그다음 계속해봅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성도 맞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겠죠. 성도 맞느냐. 그게 p.187에 나옵니다. 밑에서 6번째 줄에, [숨어 계신 하나님이 육체로 이 땅에 오셨지만 여전히 숨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요 12:36, 사 45:15).]
다시 말해서 성도의 특징은 남들에게 말해도 남들이 못 알아듣는 비밀이 있어요. 그 비밀이 지식이 아니고 오히려 나의 모든 것에 대해서 반짝반짝 작동하고 있어요, 비밀이. 재깍재깍재깍재깍 내 속에 시한폭탄 있다? 이런 것처럼, 내 자체가 비밀 보관함이 되는 거예요. 주님의 비밀을 보관하는 함이 되는 거예요, 내 자체가. 내 제일 중요한 부분에 그 비밀이 있고 그 비밀에 준해서 나의 모든 상황과 행동이 그 비밀을 드러내는 계기로서 움직이도록 성령께서 이렇게 활동합니다.
p.188 보겠습니다. 위에서 8번째 줄에, [개인에게 있어 죽음이란] 그다음 뭡니까? [종결을 뜻한다.] 종결을 뜻하죠. 맞잖아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소유, 내 지식, 박사학위 다 소용없죠. 이게 바로 나로부터의 자유가 되죠. 나는 박사학위가 몇 개다, 나는 이 돈 가지고 큰 일한다. 네 돈이 어딨어?
우리 기능은 우리가 일종의 천사가 되는 거예요. 천사는 안 죽지만 인간은 죽어요. 인간은 죽음을 맛본다는 점에서 천사도 인간한테는 안 되는 거죠. “아이고, 아저씨. 어떻게 죽음을 다 경험하십니까?” “그게 우리야. 성도야, 어? 나한테 절해.” 천사가 성도한테 꿈쩍도 못해요. 천사의 문제는 죽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성도를 죽임으로써 자유를 자유답게, 자유의 전과 후를 둘 다 소개하게 함으로서 그 가운데서 자유를 빛나게 만드는 거예요.
자유가 무엇인가를. 자유는 구원이에요. 천사한테 무슨 구원이 있어요? 없어요. 구원은 죽음을 맛볼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시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죽음을 맛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맛본 죽음을 똑같이 그걸 담을 수 있는 보관함으로 성도의 목숨이 필요했던 거예요.
p.189 보겠습니다. 위에서 5번째 줄 보면 빌립보서 1장 28절 나오죠.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증거물로 사용하겠다는 거예요. 증거물로.
탐 크루즈가 나왔던 마지막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불가능한 사명. 이게 오늘날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에요. 불가능한 사명. 그러니까 모든 성도는 탐 크루즈다. 인물은 그 정도 안 되겠지만 탐 크루즈에요.
탐 크루즈인데 이상하게 악마가 이 탐 크루즈를 노리고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것은 탐 크루즈 안에 뭐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성도 안에는 뭐가 들어있어요? 창세 전에 있었던 비밀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고 악마가 나를 괴롭히죠. 마귀가 괴롭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자세는 세리와 창기가 되어야 되죠. 내가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어야 돼요. 안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내 비밀을 내 장점으로 가리는 게 되어버려요. 그러면 주님이 전도하려고 하는데, 탐 크루즈가 자기 불가능한 사명, 미션 임파서블을 감당해야 될 건데 우리는 전도라는 이름의 내 사명을 감당해버려요. 두 명 전도했습니다, 이러고 있다고요. 참 내.
그거 말고 사람 꼬셔서 교회 오는 거 말고 네 비밀을 어떤 경우에 나타내느냐? 그걸 주께서 물으시는 겁니다. 왜? 그건 우리가 불가능이기 때문에. 미션 임파서블이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가 불에도 때로는 물에도 넘어지고 그야말로 사도 바울이 가는 길처럼 참 죽을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로마 갈 때도 물에 빠져 죽을 뻔했잖아요. 276명인가 함께 살았지만. 사도 바울 때문에 살았잖아요.
얼마나 가슴을 졸였겠습니까? 아무리 천사가 밤중에 와서 ‘너는 로마 왕 앞에 서리라’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내 환각일 수 있잖아요. 앞에 지금 배가 다 부서질 정도로 파도가 치는데. 파도 없이 그런 말을 하면 사람 마음도 간 덜 떨어지는데 이건 뭐 파도가 죽일 듯이 달려들게 해놓고는 네가 서리라 했으니까 이건 결국 뭡니까?
‘성령 받은 자는 악마의 모든 시험에서도 통과할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왜? 사도 바울이 훌륭해서? 아니죠. 아니죠. 사도 바울이 갖고 있는 복음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기어이 로마까지 당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소설로 봐가지고 야, 용쓴다. 애쓴다 하지만 당사자가 돼서 한번 해보세요. 로마는커녕 지중해 빠져죽게 되었어요.
나중에 끝나고 난 뒤에, 사후(事後),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보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는 주의 뜻이었구나를 아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자기가 성공한 데다 막 써먹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성공한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다. 비밀을 이야기 안하고 성공한 걸 이야기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방금 이야기한 것이 p.195에 나와요. 제일 밑에 [예수님의 배후에는 성령이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아, 이거 어렵죠.
전도를 할 때 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나를 전도했다고 하잖아요. 이미 그것은 전도를 모르는 거죠. ‘예수님이 와서 우리를 건졌다. 저 분은 메시아다.’ 이것은 인간 본인이 악령에 속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야, 사람 참 좋다. 그분 능력 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을 통해서 했다는 것은 어느 시점에 가야 가능하냐 하면 ‘주님은 우리하고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있었던 그 악령과 싸워 이겨서 우리를 빼내주시는구나.’ 이정도 알아야 이제사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사후에 ‘주께서는 우리를 상대한 게 아니고 우리를 잡고 있던 악마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 줬습니다.’가 고백되는 거예요.
그게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나오죠(29절). 세간이 발이 있어서 스스로 그 집 담을 못 넘잖아요. 도둑이 와서 집주인 묶고 그다음에 방에 들어가서 세간을 훔쳐 도망가는 것처럼 그렇게 빠져나가는 것처럼 너희 갇혀있는 세간을 내가 담타고 와서 악령을 이기고 주인을 묶고 악령을 이기고 악령에 매여 있던 꼼짝 못하고 있던 너희들을 끄집어내어 구원한다. 이게 마태복음 12장에 나오는 하늘나라의 모습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면 사람하고 상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광주강의 때 그런 이야기했죠. 사람하고 사람이 상대하면 반드시 마귀가 그 현장에 있어요. 좀더 열심히 하지. 좀더 친절하지. 그 사람 식사 값 낼 때 너는 맨날 열 번 얻어먹지 말고 한 번 너도 돈 좀 냈으면 그렇게 관계가 틀어지지 않지. 서로 친하게 지낼 건데 열 번 다 얻어먹어가지고 그다음부터는 바이바이했을 때 봐라. 네 보람은 어디 있느냐?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악마 빼고 예수님 빼고 나름대로 그 사람과 친밀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세상에 어느 인간이 남하고 친밀합니까? 어제 낮 설교에 했죠. 26살 먹은 어떤 여자 청년이 호주로 일하러 가요. 일 년 동안 가는데 한 마디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누구의 압력이 있어서 어제 낮 설교시간에 그걸 집어넣어서 했어요.
네가 호주가서 천 명을 만나도 그것은 네 자신의 모습을 그 사람에게서 찾았을 뿐이고 만 명과 대화해도 네 혼잣말만 했을 뿐이고 어떤 누구를 만나도 너를 부숴주는 타인을 만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누굴 만나도 더욱 더 자기를 꽁꽁 싸매기 때문에 누굴 만나도 ‘내 건 지켜야지.’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깨지는 거 없어요.
깨지는 건 예수님 외에는 깨지는 사람 없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깨집니까? “나 너하고 상대 안해. 네가 왜 호들갑 떨어? 나 너 뒤에 악마 보인다? 마귀 보인다. 마귀에서 내가 풀어주면 너는 그게 자유야. 그리고 풀려났다로 끝나지 않고 그다음부터는 나한테 오도록 성령께서 이끌 거야.” 이게 전도에요.
p.196에 보면 그런 말이 비슷하게 나와요.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라 하셨죠. 특히 이 진리 문제에 대해서요. 이제 강의 끝나가는데 꼭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게 뭐냐 하면,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면 그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거짓이 보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진리가 안 들어오면 그다음부터는 진리인지 거짓인지를 내가 굳이 나서서 판단하고 파악을 해야 돼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나한테 유리하면 일시적으로 진리처럼 보이는 그런 오류를 범한다고요.
진리가 와버리면 다시 말해서 ‘세상은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진리가 와버리면 이 세상 전체가 마귀고 악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휘둘리거나 오지랖 떨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요. 기죽을 필요가 없다고요. 거짓을 믿는데 거짓 믿는 거가지고 왜 부러워해요? 그렇거든요. 부러워할 필요 없잖아요.
진리가 오게 되면 우리에게 안정감이 와요. 정서적 안정감. ‘끝났네, 끝났어. 끝났어. 세상은 성경대로 돌아간다.’ 그게 진리잖아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온 능력으로 이 세상이 움직이면서 그 피의 능력을 모르는 자는 전부다 지옥가고.
이미 그게 확정되어버렸어요. KS마크가 확정되어버린 거예요. 이거는 내가 바꾸거나 할 필요 없어요. 우리의 일체 모든 행함에 대해서는 죄 사함이 되어버리고 어떤 죄도 우리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를 저 바다 끝에 넘기듯이 넘어가게 하셔서 이미 넘어가버려서 이제 없는 거예요.
“제가 탕자입니다.”하면 주님은 딴소리하고 있습니다. “우와, 옷 잘 어울린다. 역시 내가 입힌 옷이 이쁘기는 이뻐. 딱 맞지, 그치?” 예수님은 엉뚱한 이야기한다고요. 우리는 뭐 죄가 어떻고 그때 회개하려고 했는데 회개 못하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해요, 우리는. 단순히 이게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이게 진리가 되는 거예요. 진리가 되어버린 거예요, 진리가.
그래서 p.196 중간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전통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는 진리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인간은 전통. 인간은 공부해봐야 좀더 이렇게 오류를 줄이는 거야.” 아이고, 참내. 인간이 언제 공부해서 언제 진리를 만들어요? “공부해도 구원 받는 것하고 관계없네요.” 이게 진리입니다. 착함은 윤리 도덕은 둘째 층을 통과 못합니다. 이거 모르면 설교 진도 안 나간다 했잖아요. 내가 한 5초간 멈칫 했어요.
p.197 보겠습니다. 중간에 [전도란 교회의 붕괴를 이야기한다.] 마땅하죠. p.198 위에서 3번째 줄, [결국 전도란 사람을 기어이 구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란 절대로 자생적으로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왜냐하면 마귀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p.198에 거기 결정적 단어가 나오죠. 사도행전 28장 26,27절,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고침 받지 마!!” 이런 뜻이에요. “돌아오지 마! 내가 찾아갈 거야. 네가 알아서 오지 마.” 이런 거예요. 뭐 봉투 들고 교회오고 이런 짓하지 말란 말이죠. 돈을 잃으면 일부를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나 영생을 잃으면 어쩌고 그런 전도지 들고 오지 마.
결국 그 모든 전도지는 뭡니까?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거거든요. 그러나 인간 구원은 없어요. 인간 구원 뒤에 악마가 붙어있으니까 인간 구원하려면 누구도 구원해야 돼요? 악마도 천당 가야 돼요. 그럼 지옥은 장사가 안돼. 한 명도 없어. 지옥 문 닫아야 돼요.
p.202 중간에 봅시다. [전도란 예언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세상에 멸망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세상에 멸망이 왔음을 알리는 소식인데 이 앞에 뭐 붙어야 돼요. ‘기쁜’ 소식이죠. 주님께 대들었던 세상, 이제는 누가 복수할 차례다? 주님이 복수할 차례. 주님의 복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세상이에요.
복수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뭐 타고 옵니까? 구름타고 와서 천사들과 함께 참혹한 복수를 해버려요. 도대체 얼마나 밟아놨는지 포도주 알을 밟아놓으니까 그 밟은 분의 흰옷이 벌겋게 물들었어요. 얼마나 밟았는지. 그 붉은 옷, 에돔이잖아요. 메시아는 에돔에서 나온다. 에돔이 붉다는 뜻이에요. 심판에서 나온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빼돌려놓고 작살내는 거예요. 빼돌려놓고. 그러니까 그들이 나쁜 짓해서 벌 받는 게 아니고 악마하고 못 헤어져서 저주받는 거예요. 그럼 악마하고 왜 못 헤어졌는가? 그거는 자기 마음대로 아니죠.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거는 자기 마음대로 못해요.
악마 존재도 인정 못하고 악마 존재 알아도 헤어진다는 것은 성립 안돼요. 악마가 인간보다 더 세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주위에서 자꾸 성도란 이름으로 대들거든 가련하게 여겨야 되죠. 그리고 사람하고 싸우지 마세요. 우리의 싸움은 사람하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고 공중 권세 잡은 악마와의 싸움이에요.
사탄은 말합니다. “네가 나를 알아?” “알지! 그래, 알지.” “어떻게 아는데?” “십자가 피는 제일 싫어하잖아.” ‘십자가 피의 능력으로만, 유월절 피의 능력으로만’ 이걸 제일 싫어하잖아요. ‘구원은 외부에서 온다’를 제일 싫어한다니까요, 악마가.
자식이 있다가 “엄마는 요새 왜 맨날 놀고… 엄마답게 좀 해보세요.” “사탄아, 물러가라! 엄마는 원래 이래. 엄마는 원래 이래. 뭐 어쩌라고? 여기서 돈벌이 나가라고? 엄마 원래 이래. 용돈 주는 거나 고마운 줄 알아라.”
p.203 [사도 바울은 늘 마귀와 싸우고 있다(엡 6:10-13)] 사람하고 상대 안해요. [그 마귀의 정체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유감없이 폭로되었다. 마태복음(4:1-11)과 누가복음(4:1-13)에서 사단은 가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적 지도자? 아니, 아니. 정치적 지도자? 아니, 아닙니다. 기적을 베푸는 것? 아닙니다.
뭐냐? 세리와 창기, 강도, 죽은 자 거기다가 주님 자신의 비밀, 십자가 비밀을 담은 보관함으로 이 땅에 천사와 더불어서 데려가는 것. 주님의 영, 성령께서 그렇게 하게 하실 때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비밀이 있는 것, 성령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그 창세 전의 비밀, 십자가 피 비밀을 알 수 없다 했어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올 필요도 없는데 성령 오시고 십자가 복음 알게 하시고 온통 세상이 마귀판인 것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안 싸우고 살게 하옵소서. 굳이 잘했다 못했다 따지지 않고 살게 하옵소서. 다만 어느 상황이든 십자가 피를 알아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주저 없이 십자가 피만 우리 죄를 사한다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자신감을 허락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