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방독면을 벗자
왜 이렇게 자기 의, 자기 정당성이 살아 있는가? 인간으로서 스스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가 뭐냐 하면 이게 내 삶의 기쁨이 되기 때문이에요. 삶의 기쁨. 그러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기쁨 가지면 안 되느냐? 안되죠. 그게 뭐를 가로막고 있어요? 나의 구원받은 기쁨은 어디로 다시 돌아오느냐 하면 내 것으로 돌아오거든요.
그런데 감사는 뭐냐 하면 내 외부의 인물에 대한 거예요. 외부. 나한테 감사하는 게 아니고 내 바깥의 인물에게 감사하면, 이 삶의 기쁨마저 좌절되고 그 속에서 감사로 고마움으로, 나한테 말고 다른 분께 대한 감사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기뻐해도 탈이에요. 구원받은 기쁨도 복음의 기쁨도 탈날 정도에요.
그 감사는 아까 시편 136편도 이야기했지만 ‘해를 봐라. 달을 봐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 이렇게 되거든요. 비로소 첫째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속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파악이 되는 거예요.
그럼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방독면을 벗자’에요. 방독면을 벗어버리면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 천사 조교는 뭐라고 합니까? “빨리 나가!” 하죠. “빨리 나가. 이 세상 빨리 나가. 얼쩡거리지 말고. 빨리 나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기를 소원하죠. 빨리 빠져나가기를. 더 있다가는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이거 뭐 코로나 예방주사 또 맞아야 되지, 온난화 때문에 뭐 하죠.
특히 설교에서 말 안했습니다만 이 말까지 하려 했었어요. 후지산 눈 있잖아요. 온난화가 되어버리면 꼭대기에 있는 후지산 눈이 녹습니다. 그러면 눈이 산꼭대기에 있지 않고 우리 삶의 모든 형편에 이 자기 의가 다 녹아져있어요. 자기 정당성이.
따라서 정리하라면 이거에요. ‘환경문제’라는 거예요. 인간의 자질이 어떻고 인간이 얼마나 덜 훌륭하냐 더 훌륭하냐 그런 데에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내가 좀더 열심히 할 걸, 바르게 하면 이런 일 없을 텐데, 그런 거 다 악마의 속임수에요. 환경문제입니다. 새로운 환경.
그래서 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 교회 어떤 집사님이 이야기하신, 아직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기도, ‘십자가를 믿게 하옵소서. 아멘.’ 십자가 안의 각설탕처럼 녹아지게 하는 역할이 바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모든 것은 네 뜻대로 안 된다. 겟세마네에서 나도 겪었어. 내 뜻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는 그것을 응답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카피하면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 첫째 하늘 살면서 하셨던 모든 것이 우리한테 그대로 카피되어서 우리 마음대로 안돼요.
심지어 죽는 것마저도 베드로는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죽지를 못합니다. 어차피 죽은 인간이니까 네 죽음에 대해서 네가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재방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