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와 본성
주님의 지시, 하나님의 지시를 전달받을 때는 이게 무슨 뜻인지를 몰라요. 모르는데 주님의 지시가 주어지고 선지자가 지시에 대해서 지시가 이루어진 상황, 환경 속에서 선지자는 반드시 실패를 해야 돼요.
■“주의해. 그러면 안돼. 그러면 너는 안돼.” ‘안돼’ 할 때 우리는 보통 어떻게 됩니까? 정신 차려서 우리는 안하려고 하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시나 율법이나 계명은 반드시 계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 계명을 받은 자가 위반자가 되어야 돼요. 그래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다이렉트로 연결돼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직접 연결되면서 중간에 인간은 위반자로 위반하고 빠지는 겁니다. 빼야 돼요.
물도 마시고 떡도 먹고 가라는 말을 주님이 먼저 선지자한테 했는데, 그 말을 누가 합니까? 여로보암 왕이 하는 거예요. 여로보암 왕이. 선지자 입장에서는 미리 예상도 못했죠. 그러니까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에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했다 하면서 10절에,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
10절까지 보면 이 선지자는 제대로 말씀을 지킨 거예요, 안 지킨 거예요? 지켰죠. 그러면 선지자가 아니에요. 그러면 선지자가 아닌 거예요. 이 선지자는 자기 자신이 말씀 지킨 나와 말씀 안 지킨 나 사이에서 본성의 차이를 모르고 정도의 차이만 알고 있는 겁니다.
이렇습니다. 말씀은 위반을 통해서 내어놓아야 됩니다. 그래야 이게 말씀이에요. 말씀이 왔잖아요. 위반하는 나를 통해서 내 입으로 말씀이 이루어지고 그 잡다한 말씀들을 끌어 모아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거예요. 수요일 말씀처럼. 잡다한 죄인들이 모아져야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거예요.
내(예수님)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거예요. 지시가 먼저 있고, 지시가 먼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키려고 했지만 위반자로 드러나요. 지시를 지키려고 한 건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모른 상태에서 그러는 거예요. 반드시 못 지키게 되어 있어요. 모든 말씀은 못 지키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뭐든지 해도 괜찮아요. 왜? 어차피 못 지킬 거니까. 어차피 못 지킬 거니까요. 뭐 장담? 필요 없어요.
하나님 아버지, 힘과 힘이 모인 세상, 그것이 자기 뜻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님이 다 이룬 것을 시기 나서 대드는 또 하나의 승리를 노리는 악마의 짓인 것을 깨달았사오니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아서 뭐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본성과 관련된 십자가와 관련된 일인 것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