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답변

죄의 허용적 작정

아빠와 함께 2024. 8. 17. 21:26

하나님의 작정에서 "죄의 허용적 작정"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기원   2002-05-05 19:12:53, 조회 : 482, 추천 : 63

 

이근호 목사님, 조직신학 신론에서 하나님의 사역부분에서 하나님의 작정에 대하여 알고싶습니다.
하문호 목사가 쓴 교의신학 신론, 하나님의 작정을 보면(pp.146-147.) 지금까지 나온 조직신학 책의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말하고 있는데 특히 "하나님의 작정에서 죄에 관하여 하나님이 허용하셨다" 라는 부분입니다.

 

책 내용을 인용해 보면

 

죄에 관하여 허용적이다.

 

죄에 관련하여 하나님의 작정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논리의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주 안의 모든 일을 작정하셨다. 즉 하나님의 작정이 없는 일이 우주 안에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허다한 죄행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죄행(罪行)이 일어나도록 작정하셨다는 말인가? 이에 대하여 우리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즉 하나님은 죄행도 작정하셨다.
그러나 그 작정은 하나님이 직접 그 효과를 발생케 역사하시는 원인적 작정(原因的 作定, causual decrees)이 아니라, 이성적 피조물들이 그 죄성의 길로 나아가게 될 때, 그것을 막지 아니하시고 내버려두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이것을 허용적 작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죄행의 결과 조정, 관할하시면서 하나님의 긍극의 목적을 달성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허용적 작정을 다음과 같은 성구에서 알 수 있다.
[시 78:29]
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행 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롬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목사님, 이 부분을 가지고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는 작정을 하셨다면 창 3장에 사건도 하나님이 허용하셨다는 말이 아닌가?
실제로 장안 중앙교회 박용기 목사는 그의 저서들에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목사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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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하나님의 작정에서 "죄의 허용적 작정"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근호   2002-05-06 07:21:59, 조회 : 636, 추천 : 105

 

>'작정'이라는 용어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구원론으로 접근하겠다는 의도가 강합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벌리시던 분입니다.  전쟁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악을 허락(혹은 허용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을 전 우주를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미 악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이러한 '악한 세력'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구원의지와 결부를 시킵니다. 즉 "왜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면서 신경 거슬리게 악을 용납하시는 것인가"하고 짜증을 부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조차 사실상 악이며 유대인들도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신의 절대적 주권론과 예정론으로 무장한 채 하나님을 이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격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악으로 몰라세우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자의에 의한 구원시켜 주는 자만 구원시킨다는 사실을 극도로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에 의한 예정론'을 이들은 알지 못하고 '자기 구원에 도움되는 예정론, 또는 주권론, 또는 작정론' 같은 것으로 대중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자기 유지에 위한 승부에 나서면서 이런 유대교적 의식으로 밀고 나갑니다. '예수'라는 이름만 도용할 뿐이지 실은 참을 수 없는 구원욕구와 신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직접 관련시키는 쪽으로 생각하고 움직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악의 활동을 허락하신 것은, 그 어떤 인간이라도 악을 알아서 그 세력에서 벗어날 위인이 없음을 분명히 해서 오로지 예수님의 자의에 의한 구원능력과 그 공로성만 증거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작정'이 아니라 예수님 그리스도만이 행할 수 있는 '예정'에 속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