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2024. 8. 6. 10:10

언약이 주어진 환경을 광야라고 하는데 언약이 주어졌다고 해서 언약이 완성되는 건 아니에요. 주어진 언약이 완성 상태로 생겨나는 환경이 바로 광야입니다. 어떻게 언약이 스스로 자기 완성의 모습을 드러내는지 그거는 인간 속에 상처를 심어놓고 그 상처를 하나님이 찾아오는 그러한 방식으로 합니다.

인간 속의 상처라는 것은 쉽게 하면, ‘내가 어디 있지?’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 광야는 내가 원했던 장소가 아니고 여러분 인생이 여러분 원하던 인생이던가요? 아니잖아요.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내가 왜 있지? 또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인생을 살지?

이미 범죄 한 인간을 자기 조건을 이루는 환경 속에 주님께서 잡아당겨요. 이걸 포획합니다. 가져와요. 가져와서 인간 속에 상처를 심어놓고, 상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주께서는 인간을 몰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인간 속에는 뭐가 생기느냐 하면 낯섦이 생기죠.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닌데, 내 인생 이래 되면 안 되는데, 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인간 속에 불편함, 그리고 서글픔, 내 뜻이 엎어지는 그 좌절감,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자꾸 조성해나가요. 조성해나가면서 인간들로 하여금 이건 내 뜻이 아닌데 나는 이런 인생이 아니고 싶은데, 라고 자기 자신을 피신시키는 동작을 유발해요. 그렇게 되면 인간은 고통 없는 존재로 이동하고 싶은데 주님께서는 여기 존재에다가 자꾸 사건을 집어넣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사건에 합류하는 그걸 포함하는 인생으로 살게 만듭니다.

내가 원하는 식으로 인생을 끌고 가는 게 아니고 어떤 특이 사건이 자꾸 나로 하여금 내 한계를 내가 쥐고 있을 수 없도록 내 한계를 파괴되도록 주께서 끌고 가는 상황을 만들어내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