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내가 모르는 죄인

아빠와 함께 2023. 8. 14. 18:43
 



모세의  떨기나무 이전 과.  떨기나무 이후

“신발 벗어라.” 네가 신발 벗으라는 건 이 되라는 거예요. 

우리는 능동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주께서 그걸 피동적으로 바꾸는 이유는 그 차이 때문에 그런데요, 그 차이를 집어넣을 때 주께서 우리 성도에게 요구하는 건   “너는 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냐?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내놓아야지.”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가 지옥과 천국 차이잖아요. 우리 인간이 시간과 공간에 매여 사는 것, 내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것, 이건 우리가 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누구의 철저한 소유가 된다는 것, 이건 할 수 없는 겁니다.

 

외부에 있던 말씀이 내부로 꼬꾸라지게 들어가는 것이 구약 역사에요.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뭐냐? 

너의 인생 속에서 진정 

하나님의 악한 자가 누구냐를 생산하는 현장으로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진짜 악한 자는 예수님의 악한 자가 진짜 악한 자 

사울은, 자기가 하나님께 너무나 충성 됐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예수에게 원수가 되었다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악한 자가 누구냐면, 하나님 믿는 자에요. 악한 자에서 건진다는 말은 하나님 믿는 집단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게 바로 천국이고, 그게 구원이고, 그게 바로 악한 자로부터 탈출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계시 듣고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알게 된 계시의 내용이 뭐냐, 이겁니다. 인간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예요.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있어요. 있다고 하는 것은 여자의 후손 있고, 뱀의 후손이 있어요. 거기에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있어도, 없는 존재예요. 실질적으로 전쟁을 벌이고 실질적으로 이 우주를 주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닌 이유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인간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악마의 아바타가 되는 거예요. 가현체, 눈에 보이고 형태가 있는 어떤  실체, 이게 인간이에요.
그러면 성도는 뭐냐? 성도는 천상의 기능을 해야 할 천사의 가현체가 되는 겁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맞짱뜨는 역사를 만드는 것이 이스라엘 역사에요.

오늘 본문에서 악한 자라고 하는 것은 사울에서 바울로 되지 못한 자,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것에서 못 빠져나오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게 왜 마귀에게 속했느냐는 것은, 요한계시록 13장 16절에서 18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짐승의 이름만이 인간의 이름이에요. 인간의 이름은 몽땅 다 짐승의 이름이에요. 그 짐승의 이름을 숫자로 표현하면 ‘666’입니다. 무슨 표를 받는 것이 아니고 인간 자체가 ‘666’이에요, 

사도 바울은 “사자의 입에서 건져냄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 하는 거예요.  
  

예수님에 의해서 밟힌 사람은 그 사람이 길이 돼요. 예수님에게 밟힌 사람. 원래 잡초가 많은데 밟으면 나중에 잡초 많더라도 그게 길이 돼요. 주님께서 야무지게 밟고, 피동적으로 밟힌 사람은 바로 그 자체가 이 세상에 천사의 기능을 보여주는 주님의 길이 되는 겁니다.

  
성도가 되었으면 적어도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돼요. “내가 있는 곳은 이것은 없는 곳이다.”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돼요.

이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악한 자가 집결되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인간들은 몰라요.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악함의 극단, 악함의 극단을 체험해주셔야 돼요. 이게 복음입니다. 인간도 아닌 게 그 주제에 천당 가려고, 제발 좀 그러지들 마세요. 천국은 나의 세계가 아니고 주님의 세계에요. 

 

성경 말씀은 뭐냐 하면, 우리 내부에 꽂아요,   

 

여러분이 할 수 없는 것을 내놓으세요, 할 수 없는 것. 웃을 일이 아니에요 지금. “수련회 참석할 수 없었는데 참석했습니다.” 이게 바로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게 하셨다는 두 개 다를 이야기하잖아요.

아담에 속한 인간 자체가 악한자임을 들춰내는 식으로 주께서 일하시는 거예요.

예수님 아는 방법은 예수님 나를 내가 모르는 죄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그 사실을, 주께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사람은 이미 영생 얻은 사람입니다.

시편 51편 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다윗이 새삼스럽게 하게 된 것은 나단 선지자 때문이 아니고 주께서 의도적으로 평생을 밧세바 만나고, 그 남편 우리야 죽이고 하는 이 모든 것은 주께서 이거 하나, ‘네가 바로 애초부터 죄 중에 태어났다’는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겁니다.
왜 다윗이 알아야 됩니까?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거든요. 진짜 이스라엘 왕은 백성들도 왕과 똑같아야 돼요.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죄를 행해서 죄인 된 것이 아니고, 인간은 뭘 행하고 안 행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주께서 피동적으로, 수동적으로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그 절차가 뭐냐? 주의 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악한 자가 되어야 됩니다.

주께서 잘난 나를 자근자근 밟아서 악한 자로 될 때 그 밟힌 우리가 주께서 가신 길이고 이게 천국 길이에요. 주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자, 죄인은 뭐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우기는 자, 이게 죄인이에요. 우리는 아무리 복음 들어도 돌아서면 ‘역시 내 할 것은 내가 해야지’ 그걸 주께서 그때그때 마다 밟아 주십니다.

내가 사람도 아닌데 사람인양 지금 가상 가면을 쓰고 있는 거예요.
그 벗은 가면에 진리가 있습니다. 가면 벗으면 아무것도 없고 벗은 가면에 악한 자라는 그 진리 내용이, 주께서 붙여준 그 정보가 벗은 가면에 있어요. 가면 벗지 마세요. 그 진리 내용, 악한 자라는 그걸 덮어쓰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부엌에 있는 냄비가 움직여요. 보니까 그 안에 벌레가 들어있어서 그 벌레가 냄비를 움직이니까 냄비가 움직였듯이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네가 한 게 아니다. 너는 인간도 아니고 너는 그냥 주의 기능자야.”라는 식으로 우리를 움직여줄 때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내가 빠져나올 수 없는 악한 자에서 제가 빠져나왔습니다.”라고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옵소서. 무엇이 그렇게 주의 복음을 반발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싫어하게 만들고 예수님보다 내가 더 좋게 만드는지의 그 사실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바로 그 사실을 우리가 돌아서서 기뻐하면서 진리로 반길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