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2022. 10. 19. 07:19

408강-YouTube강의(대화 아가 6:3)20221018-이 근호 목사


제408강, ‘대화’.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는 인생길에 동행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작업,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사는 것은 인생이라 할 수 없고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서 같이 가고 싶을 때. 마음 맞는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대화가 되는 사람, 대화가 이어지는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바로 상대를 찾는 거죠, 내 인생이라는 게. 자기가 가는 길의 동행자. 옆에 붙어있다고 동행자가 아니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행자와 함께 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 우리네 인생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내 말과 상대의 말이 만나서 거기서 의미체계가 형성됩니다. 아름다운 의미가 만들어져요. 혼자 있으면 내가 왜 사는지 모르는데 상대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아, 내가 살아야 될 이유가 너가 있으매 네가 있는데 내가 필요한 사람이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서 살아야 되겠구나.’ 또 상대도 마찬가지고 ‘너가 있으매 내가 있게 되었다. 너가 있으매 내가 있다는 뜻을 알겠다.’ 그래서 서로가 만나서 의미 있는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게 인생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한 사람만 하면 또 그 밑천 다 바닥나잖아요. 그럴 땐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또 대화가 이어지고 그것도 바닥나고 별로 들을 게 없으면 또 새로운 사람 만나고 이게 인생살이 같아요. 사람 사는 것.

그러면 그렇게 누구 말 통하는 사람 만나는 게 잘못인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혼자 뭐 도 닦듯이 산 속에 살아야 되는가. 그렇게 반박이 들어올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홀로 살지 못하고 이야기 통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것을 훤히 잘 아십니다. 아시는데 이야기가 제대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대화해야 된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게 아가서 6장을 보면 나오는데 구약 아가서 6장 1절에서 3절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이켰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여자의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자가 거기에 대해서 화답을 하죠.

그러니까 아가에 나오는 이 여자 주인공은 솔로몬 만나기 전에 이미 자기들끼리 이야기가 나름대로 통하는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현재 있는 그 여자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어디를 바라보게 하는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 있느냐. 이제 사랑의 레벨, 사랑의 위층, 사랑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 친구와 대화하고 인생 그걸로 끝나는 걸로 마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랑의 세계가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

2절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이 사랑하는 사람, 아가에서는 여자 같으면 남자, 남자 같으면 여자 서로 짝을 이루어서 하나는 신랑이 되고 하나는 신부가 되는 그런 짝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 짝을 구성하면서 우리가 무엇에 유념해야 되느냐 하면 그 남자와 여자 사이에 대화가 된다는 겁니다. 서로 대화가 돼요. 왜 찾는가? 말을 섞고 싶어서 찾는 거예요. 말이 통하니까 찾는 겁니다.

말이 통하지도 않는데 찾는 사람 봤어요? 없죠.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걸 평할 수 있는 사람을 기어이 찾고야 말리라. 찾아다니는 그 세월이 인생살이에요. 인생살이입니다. 이걸 탓할 수는 없어요. 모든 인간이 타고났으니까. 혼자 못 사니까. 그런데 그렇게 대화를 하더라도 어디까지 격상되어야 되느냐 하면 완전한 사랑의 세계, 사랑의 나라까지 이 대화가 격상되어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랑의 나라에 같이 가자는데 장소가 어디냐? 동산인가? 백합화 핀 곳인가?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 곳인가? 향기로운 꽃밭이고 푸른 언덕인가? 여기 아가서 내용 전체를 보게 되면 아가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대화하는 대화 무대 전체가 완전히 다채로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어요.

물론 결혼식장에 가면 화사하고 단아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죠. 결혼식은 그렇게 아름답게 되어있어요. 그러나 그 아름다운 결혼식장의 주인공이 꽃입니까? 동산입니까? 백합이 주인공이에요? 아니죠. 주인공은 따로 있죠.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남자와 여자가 대화가 되고 이야기가 되면서 그 이야기 내용이 무엇인가. 이야기 내용이 3절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그러니 동산에 가는 게 목적이 아니고 예루살렘 궁전에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는 너에게 도달하고 너는 나에게 도달하는 것. 나는 나를 버리고 너에게 소속되고 너는 너를 버리고 나에게 소속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 상실이 되겠죠. 내가 상실되겠죠. 더 이상 내가 나에 대해서 쥐고 있지 않을 거죠. 진실한 사랑의 대화는 여기 있는 나 좀 잡아 잡수세요. 잡아가세요. 당신 품 안에 나를 품어주세요. 거기에 화답해서 저쪽도 마찬가지이고. 나를 가져가라는 거예요.

이 사랑의 자리에서는 특징이 뭐냐 하면 본인의 자아 주장이 날라가버렸다는 거예요. 상대에게 모든 것을 위탁하고 일임하는 거죠. 맡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는 나의 대행자가 되는 겁니다. 대행자는 성경에서 유명한 말이 중보자에요.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을 만나서 나를 그에게 인계해버리는, 그럴 때 필요한 그 대화. 그 대화가 통한다는 겁니다. 나 이런 게 있는데 이것 좀 당신이 가져가주면 안되겠어요? 나한테 이런 게 있는데 당신이 맡아주세요.

오천만 땡겨주세요, 가 아니라 내 것을 당신이 가져가세요. 아낌없이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있는 아가에 나오는 사랑의 장소입니다. 사랑의 장소를 못 만나면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내가 행복해질 자리를 찾아요. 아, 천국 가고 싶다. 왜? 천국은 아픈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으니까 내가 살기에 얼마나 편한가. 이게 인간들이 노리고 있는 잘못된 천국이에요.

천국에서는 나를 상실해버리는 겁니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고 내 것을 다 가져간 그분이 사는 곳. 나는 그분의 곳에 내 것 가져갔다는 그 조건 하에 나는 거기에 합류하는 세계. 그게 바로 천국이에요.

달라고 달라고 하는 곳이 천국이 아니고 ‘가져가세요 주님, 가져가세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져가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나한테 소속된 것을 나는 그대에게 소속될까. 소속되고 싶습니다.’ 하는 그 대화. 그 대화가 사랑으로 격상된 성도만이 아는 천국 속의 사랑의 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