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극단적 피동성

아빠와 함께 2022. 9. 25. 19:39

차가 고장 나서 정비소에 맡겼는데, “사흘 뒤에 찾아오세요.” 사흘 뒤에 찾으러 가니까 주인 보기에 뭐 고친 것도 없어요. “좀 고치라 했는데 왜 안 고쳤습니까?” “종료되었습니다. 다 고쳤습니다. 고물인데, 원래 고물이에요. 원래 고물을 고물답게 하는 게 우리 정비소의 주특기입니다. 다른 정비소, 이 세상 어느 정비소도 못하는 겁니다.” 철저히 고물을 고물답게 만드는 것, 가다가 덜렁거리면서 타이어 두 개씩 빠져버리고...... 그게 고친 거예요.

고쳤다는 것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건방짐이죠. 끊어졌으면 끊어진 대로 살아야지. 끊어진 것을 고치겠다는 그 의도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예수님을 보낸 주님의 조치에 대한 모독이에요. 그래서 그런 노래 있잖아요. 끊어진 것은 끊어진 대로~. 뭐 그런 노래는 없습니다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죠. 끊어진 것은 끊어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뭐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선지자의 속성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선지자는 언약에 의해서 그런 속성을 가진 거예요, 언약에 의해서. 그래서 진짜 선지자치고 자진해서 선지자 될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난입하는 거죠.그래서 만남은 뭐라 했습니까? 만남은 어떤 만남? 나를 흔들어버리는 만남. 흔드는 만남. 나를 소실시키는 만남. 나를 흔든 만남의 결과가 뭐냐 하면 극단적인 피조성이에요. 여기에는 어떤 목적의식도 용납되지 않고 기대심리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앞길, 미래, 희망 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피동성이에요. 어디를 가든지 어디로 몰고 가든지 그건 내 소관이 아니죠. 왜냐하면 나는 이미 흔들림에 의해서 갈기갈기 다 해리되었기 때문에 산산이 다 찢어졌기 때문에, 내 속에 침투한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예언이 나를 주도하고 지배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이런 말씀을 판단했던 그 체계, 선악체계 그것이 악했다. 나빴다. 따라서 내가 나빴다. 판단하겠다는 것, 주의 말씀을 판단해서 내가 잘 되어보겠다, 내가 다음에는 그런 실수 두 번 다시 안 하겠다는 그 판단 자체가 그것도 목적이잖아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한 적 없습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자기 백성을 다루십니까?  죄 사함의 실효성 때문에 그래요. 죄 사함의 실효성. 내가 죄를 알고 내가 죄를 씻어줄 분을 찾아서 결합시켜서 죄 사함에 도달하는 이런 가짜는 천국에서 안 받아줍니다. 안 받아줘요. 여러분들이 한국 교회 목사들 설교할 때 바로 이것을 부정하는가를 한번 살펴보세요. 이것을 부정하는지 안 그러면 긍정하는지.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여러분 죄를 위해서 예수님 오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실효성 없거든요. 왜 실효성이 없는가? 여기에 뭐가 개입되느냐 하면 선악체계가 그대로 살아있어요, 선악체계가. 선악체계가 부정당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어요. 죄라는 것도 선악체계에 입각한 죄의 개념을 끄집어내고 있는 거예요. 이런 시도 자체가 죄라는 것, 그것을 모르죠.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가 시커먼 죄인이라는 거예요. 이게 싫다는 거예요. 내가 죄인 되는 것을 왜 싫어합니까? 아니 더 나아가서 물읍시다. 극단적인 피동성이니까. 내가 지옥 가는 것이 왜 내가 싫죠? 내가 지옥 가는 것을 왜 내가 싫어하느냐? 그 싫어하는 이유가 뭐냐? 그 해답 알고 있습니까? 인간은 본인이 뭘 믿고 있지 않은지를 몰라서 그래요. 인간은 뭘 안 믿습니까? 나는 절대로 나를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안 믿고 있는 거예요. 인간은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는 겁니다. 도저히 나는 내가 믿을 대상도 아니고 믿을 내용도 아닌 것을 본인이 믿지를 못하는 거예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마귀가 그렇게 만들었죠. 마귀가. 이건 아무 실효성 없습니다.

그럼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죄 사함의 실효성을 증명하는 용도로,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죄 있다고 우기는 인간을 부른 게 아니고 그냥 죄인으로서 부른 거예요. 죄인으로서. 언약은 그런 가운데 생성돼요. 언약이라는 게. 언약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언약은 사건입니다. 특이한 사건이에요. 인간이 갖고 있던 선악체계와 모든 지식체계를 총동원해도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에요.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이에요. 그게 또 마땅하고요.
그러면 언약 사건은 어떤 순간에 찾아왔다고 느껴지는가? 내가 나한테 깜빡, 깜빡이 아니죠, 평생 동안 내가 속아왔구나. 내가 나를 지킬 대상이 안 되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냥 나만 지키면 인생 선방했다고 우겼던 그 모습자체가 이게 진짜 악마한테 속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