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답변

구제와 선행

아빠와 함께 2022. 7. 12. 18:02

질문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나 같은 교회에 다니는데 노인이 몸이 아파 먹을게 없거나, 직장을 잃어 살 집도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먹을 것을 주고 재워주는 것은 구제가 아닌가요? 전에 목사님 설교에 밥퍼주는 것은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말리는 것과 같은 거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를 돌봐야 하는 건가요?  어차피 주님께서 살게하실 자는 살고 죽일 자는 죽는 거니 주변 사람이 어찌 살던 상관할 바가 아닌건가요?  믿음의 가정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하신건 믿는자가 어려울 때는 돌보고 거리에 걸인이 죽어가는 건 못본체 하라는 의미인가요? 근데 믿는자라는 건 어떻게 아나요? 교회에 다닌다고 복음을 듣는 것도 아니고 교회다니는 사람이라고 나를 포함해서 다 믿는 사람 같지도 않은데...  전에는 거리에 거지가 동냥하는데 못본체 하거나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이 도움을 청할 때 거절하고나면 죄책감에 괴로웠는데 이제은 우연히 누구를 돌봐주고 나면 자랑하려는 본심이 발동한건가 싶어 찜찜해서 아예 쌩까고 못본체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제나 선행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물질적이 아닌 복음을 전해주는 것만 의미하는 건가요?

답변 이근호

불신자의 선행과 구분되어야겠지요. 불신자의 선행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아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신자는 행함을 통해서 ‘자기 부인’이 도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즉 그 어떤 경우든 ‘내가 한 선행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음’을 아는 겁니다. “나는 이 동냥과 구제하기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나의 의를 축적하는 본성을 지닌 자인지를 새삼 알았다. 나는 내가 선행했다는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는 악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담박에 왼손이 알아버리는 그런 죄를 발산시키는 존재인 줄 새삼 알게 되었다”고 고백되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 수시로 발생시키고 맞닥뜨리게 하시는 이유는, 새삼 죄인인 것을 알게 하는 겁니다. 즉 은근히 성도답게 선행했다는 인식을 떨쳐버리지 못할 정도로 악한 자임을 알게 하기 위해 “자 슬슬 성도답게 선행해봐?”라는 동기를 일으키게 하십니다.

뭐가 되었던지 하세요.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나는 자아를 필히 살피세요. 그렇게 되면 내가 상대에게 선행이 아니라 상대를 만나게 하셔서 나의 잘남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주님이 일으킨 사건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교만과 자만은 소위 선행을 했을 경우에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스스로 악행했다고 자부하고 회개하고 반성할 때도 교만과 자만은 어느새 성도의 마음 한 가운데 들어서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 부인(否認)이라는 결과는 주님의 솜씨가 되니 그것이 주님이 주신 용서라는 사랑만 드높아질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5:6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