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복
1.인간이 죽을때마다 언약은 리셋된다.
2.언약 변천과정에서 열두 지파가 균등하게 나가야 할 이스라엘이 특정지파가 주도권을 쥐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야곱의 열두 지파의 의미가 상실한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의 족보에서 레위지파가 일어나야 된다. 제사 담당이다. 율법이 있어야 자기 의미가 발생한다. 율법을 먼저 주고 레위지파가 율법을 쥐고 있으니 레위 지파 없으면 이스라엘이 망한다. 정치적으로는 요셉 지파가 다스렸 지만 이스라엘 전역에 레위지파가 파견되어 있다. 땅은 없지만 이 땅을 보존할 엔진 원동력은 하나님의 율법이 살아 있어야 하나님의 복과 연결된다. 그래서 레위지파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중요한 레위지파를 빼 버리면 이스라엘 역사가 진행될 수 없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를 제치고 유다지파가 나왔다. 변화되었다. 율법의 시효가, 용도가 끝났다. 율법이란 아브라함에게 주신 원래 내용에 대해서 보조적 위치에 있다.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다.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아브라함에 있는 내용 속에 너희가 복을 받을 만해서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있는 복이 복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하나님의 일관성 있는 취지를 아브라함에게 복으로 제공했다. 지파의 바뀜을 통해 하늘의 멜기세덱의 족보를 따라 메시야 온 것이 맞잖아라고 이야기한다.
3.발람이라는 사람이 여호수아 전쟁 가운데 죽는다. 발람의 죽음은 저주로 통하는 죽음이다. 그러면 발람의 죽음이 왜 중요한가. 이 발람이 이스라엘과 어떻게 엮였는가? 이스라엘에 대해 왕의 존재를 예언한 사람이다. (민 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발람이 이스라엘이 끝날 때 등장하는 왕을 발람이 예언했다. 발람이 예언하고 저주스런 죽음을 당한다. 하나님의 예언은 저주스런 죽음과 축복된 죽음을 양상한다. 두 죽음은 예언에 준해서 결정된다. 쉽게 말해서 복음 전한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뀌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발람은 바뀌지 않았다. 돈 받고 예언했다. 복음을 전하고 예언을 전해도 본인이 사는데 급급했지 어디에 죽을 것인가가 본인의 희망사항이 아니었다. 수직적인 멜기세덱의 연결고리가 되지 않음에도 그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 바른 말인데 전하는 본인은 지옥가고 있다. 그것이 어느 상황인가? 이스라엘 상황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4.세상적인 희망사항은 이미 성도로써 확정되었다. 다른 희망사항은 없다. 제대로 보고 죽자.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매일 십자가에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막벨라 가족장지에 주제넘게 초청받아 들어가는 셈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묘지로 오셨다. 죽을 때 나와 더불어 죽자. 내 안에 들어와서 죽어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 다른 수가 없다. 내가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멜기세덱의 족보를 따라, 그 노선을 따라 온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지상의 유다지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다. 예수님이 오신 족보다. ⓑ모압여인 이방인 룻, 외부인이 들어온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님이 오셔서 복과 저주를 새롭게 규정하신다. 기존 우리 규정은 주께서 일체 인정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스스로 선하다 악하다는 매일 같이 주께서 삭제시키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결과물로서 우리 삶 자체를 복으로 간주하신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율법 없이 주신 복, 저주받은 자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그냥 집어 넣어주신다. 아브라함의 복의 역할이다. 그냥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율법과 상관없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셨다. 이것을 가지고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이라 한다. 기쁜 소식이다. 내가 너에게 기쁘다는 말은 내가 너에게 준 것으로 기쁘다.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쁘다. 네가 주님의 사랑의 받아서 내가 기쁘다가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너를 예쁘다 하기 때문에 예쁘다 하는 그것이 내가 기쁘다.
5.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지혜를 완성했다. 구약 전체를 완성하러 오셨다. 구약에서 룻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룻은 이방여인이라 율법도 없는데 보아스로 하여금 혼인하게 했다. 율법 없는 쪽에서 왕이 등장했다는 것은 하늘의 초월적 왕이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에 의해서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제사장 역할을 한다. 율법이 왕이란 인격으로 구체화 된다.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언약의 변천과정에서 맨 마지막에 어떤 인물이 등장한다. 시작은 아담의 존재들이 있다 이것을 거쳐, 주님의 언약을 거쳐, 요동치면서 교체되어 예수그리스도로 최종 종결된다.
하나님 아버지 ⓐ전체를 보고 부분을 보게 하옵소서. ⓑ십자가 안에서 성경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모든 것이 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 완료시키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쓰여 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의 이름을 위해서 어떻게 활용되는 것을 우리의 구원보다 더 기뻐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