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주님의 통치

아빠와 함께 2021. 12. 12. 21:38

오만-일상 행동 하나하나가 자기 앞의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지 않는 겁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란 의식이 없단 말이죠. 

악인-사명 우선이냐, 존재가 우선이냐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

자기보다 자기 앞의 주의 존재가 더 중요하고 그 주님의 존재로부터 사명이 나와서 사명에 의해서 자기가 후차적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사명 없이 산다는 것은 그건 홀로 사는 건데 악이 되는 겁니다.

선지자는 미리 대비하라고 예언하는 게 아니고 현 상황이 여기서 하나님께서 끝장내도 너희들은 할 말 없어. 심판의 기능으로 선지자가 작동합니다

섬김-왕과 백성 사이에 통치하는 통치원리-다윗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왕 되신 하나님이 함께 있어요. 자기가 왕이 아니에요. 누가 왕이냐? 여호와 하나님이 왕입니다. 그러면 누가 백성이에요? 다윗은 백성의 대표자가 돼요.왕과 백성 사이에 통치하는 통치원리를 뭐라 했습니까? 섬김이죠. 다윗은 지금 하늘의 명대로 백성들 위해서 섬기고 있는데 압살롬이나 백성들 눈에는 다윗이 자기를 갑질하고 있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가 탐이 나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모든 인간, 통치 받는 그 나라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겁니다. 잔소리를 해대니까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지 인간들 마음은 자기가 자기에게 왕이 돼요.  하나님의 왕 되심과 반대되는 본질, 반대되는 원리가 각자 인간들 속에 강렬하게 작열하고 있습니다.자력으로 못 빠져나와요. 십일조 하라면 해요. 선교 하라면 선교 갑니다. 봉사합니다.그러나 마음은 안 바뀌어요. 왜냐하면 악마가 준 마음이 물살이 세도 너무 세요.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죽는 거예요. 이걸 예수님은 넓은 길이라 해요.넓은 길을 사람이 찾는 이유가 하나하나 따져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방탄소년단이 좋다. 하나하나 따져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한두 명 방탄소년단 좋다고 하면 그 물살에, 방탄소년단 이야기 안 하면 친구들끼리 대화가 안 돼요. 이미 물살에 들어갔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라요. 내가 나중에 나이 들면 교회 다녀야지. 그게 안 돼요. 돈 좀 벌어놓고 교회 나갈게. 이게 안 된다니까. 내가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물살에 포위돼있어요. 내일 잘할게요, 모레 잘할게요. 안 돼요. 오늘이 최후의 날이에요. 오늘이 주의 목전에 심판 받는 날이라니까요. 나만의 생활, 나만의 터전, 영역, 그 ‘나만’이라는 게 없어요. 전부 외부의 물살이 다 만들어낸 소용돌이에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통치란 것은 내가 선택했다고 해서 인간에게 덮쳐있는 악마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향성 때문에 정신은 방향성을 갖고 있어요. 모든 인간은 어떤 화살표가 있다고요. 교회 가도 노리는 게 있고요, 찬양해도 얻고자하는 기대함이 있고요, 헌금은 물론이고, 봉사는 물론이고. 행동 하나, 부모 효도하고 섬기고 누구와 친하게 지낼 때 뒤에 은근히 노리는 게 있다니까요. 그게 뭐냐? 바로 인간의 근본적인 그 물살이 뭐냐? 인간이 임의대로 자기중심으로 선과 악을 나누고 있다는 그 점이 문제입니다. 선과 악이란 물살을 못 빠져나옵니다.

그러면 다윗은 선과 악을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봤는가? 7절, 8절 읽어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인자하심, 긍휼, 주님의 의 .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벗어난 사람만의 고백이다? 선과 악을 본인이 선택하는 그 물살에서 벗어난 사람이 보는 세상보기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의 특징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시5:9)-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특정인간만이 아니라 다 그렇다

 성도-ⓐ원수의 속성- 자기가 자기에게 왕이 돼요. -목표가 원활하게 잘 되면 선 차질이 있으면 악으로 간주 - 하나님의 왕 되심과 반대되는 본질, 반대되는 원리가 각자 인간들 속에 강렬하게 작열하고 있습니다.자력으로 못 빠져나와요. 십일조 하라면 해요. 선교 하라면 선교 갑니다. 봉사합니다.그러나 마음은 안 바뀌어요. 왜냐하면 악마가 준 마음이 물살이 세도 너무 세요.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죽는 거예요. 이걸 예수님은 넓은 길이라 해요.넓은 길을 사람이 찾는 이유가 하나하나 따져서 그런 게 아니에요. ⓑ언약을 받았기에 언약의 통치성 즉 왕이신 주님이 나를 통치하는 속성  이  같이 있다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이 말씀은 간단한 말씀이에요. 다윗이 쫓기는 입장에서 어떻게 반란군이 망할까? 그쪽의 지략가가 아히도벨인데 그의 지략을 무효로 돌려서 어서 반란군이 진압되게 하옵소서, 라는 그런 내용으로 생각하겠지요. 누구나. 더 이상 끄집어낼 것 없잖아요. 
그런데 이 사실을 인간 대 인간의 전략 싸움이라든지 그동안 전쟁했던 노하우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데 이걸 유일하게 하나님의 일로 본 사람은 다윗 본인이에요. 그것은 반란의 본질이 누가 봐도 압살롬이 다윗을 공격하는 것이 반란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다윗에게 반란의 본질이 거기 있는 게 아니에요. 대신 왕국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윗입니다. 이건 다윗 말고 아무도 몰라요. 요압도 몰라요. 알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왕 되신 하나님이 함께 있어요. 자기가 왕이 아니에요. 누가 왕이냐? 여호와 하나님이 왕입니다. 그러면 누가 백성이에요? 다윗은 백성의 대표자가 돼요. 왕과 백성 사이에 통치하는 통치원리를 뭐라 했습니까? 섬김이죠. 다윗은 지금 하늘의 명대로 백성들 위해서 섬기고 있는데 압살롬이나 백성들 눈에는 다윗이 자기를 갑질하고 있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가 탐이 나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모든 인간, 통치 받는 그 나라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겁니다. 잔소리를 해대니까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지 인간들 마음은 자기가 자기에게 왕이 돼요. 이건 인간들 본인이 자율적 통치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과 반대되는 본질, 반대되는 원리가 각자 인간들 속에 강렬하게 작열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문제. 그렇게 작열하는 다윗의 섬김을 보고, 다윗이 저렇게 섬기니까 우리도 본받아서 다윗처럼 섬기는 자로 자기를 부인하고  그런 마음으로 바꾸자고 할 수 있겠지요. 그게 안 됩니다.  악마가 준 마음이 물살이 세도 너무 세요.  이걸 예수님은 넓은 길이라 해요. 넓은 길을 사람이 찾는 이유가 하나하나 따져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물살에 포위돼있어요. 내일 잘할게요, 모레 잘할게요. 안 돼요. 오늘이 최후의 날이에요. 오늘이 주의 목전에 심판 받는 날이라니까요. 나만의 생활, 나만의 터전, 영역, 그 ‘나만’이라는 게 없어요. 전부 외부의 물살이 다 만들어낸 소용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