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주님과 우리

아빠와 함께 2021. 11. 23. 17:14

감사하면 성령의 일이고 공포스러우면 악령의 일이다. 이게 이렇게 증명돼요. 범사에 감사하면 이게 성령의 일이고 공포스러우면 이게 성령의 반대가 악령이니까 악령의 일이 되는 거예요.

주여, 아무 것도 무능자를 이렇게 구원해서 감사합니다. 카운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계 벌써 5초 지났어요.벌써 나는 뭐냐? 이쪽에서 이쪽으로 내려와 버렸어요. 감사합니다, 하니까 신자 맞지요, 라고 벌써 내려와 버렸어요. 자꾸 나는 내가 일한 것에만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나를 근거만 기억하고 있다고요. 그것을 가지고 뭐냐 하면 이게 시험이라 하고요,

시험의 공간이 이 세상이고, 악마가 시험해요.시험 받는 이유는 뭐냐 하면 악마와 한 통속되는 속성이 우리한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로 인하여 사망을 낳아요. 그러니 우리 욕심이 죽을 이유가 있기 위해서 우린 날마다 욕심쟁이 우후후 돼야 돼요. 날마다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어요. 나 자신의 가치를 못 놓는 욕심, 이 길로 가고 우리는 이 길로 그냥 죽으러 가는 거예요. 브레이크도 없이 그냥 가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계속 성령의 사건으로 개입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나와 나 중첩된 현실, 산수에서 분모, 분자 하듯이 늘 중첩되게 보는 거예요. 이렇게 죄진 나는 그림자고 우리의 생명의 실체는 하늘에 앉으시고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죽었어요. 이 구조입니다.이 구조가 주님 쪽에서 보면 이렇게 돼요. 주님은 머리가 되고 육신 되는 우리는 이 땅에 아직 더러운 땅에 발을 딛고 있고. 그러나 우리는 머리를 쳐다봐야지요. 나를 보지 말고. 주님이 당한 그 시련을 우리가 양이란 이유 때문에 같이 공히 당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일이 또 가짜 목자 이게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꼭 있어야 돼요. 필수적이에요. 왜? 예수님도 예수님의 활동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유대사회를 뭐로 만들었습니까? 악마의 힘이 농축된 그 사회를 만들었잖아요. 우리가 양이라면 동일한 그 사회현실에 온몸으로 견뎌야 되고 견디기보다도 겪어야 돼요. 견딜 순 없고 그냥 겪어야 되죠. 그 체험을 겪어야 돼요. 늘 자기 부인이 되도록 그렇게 하는 겁니다.그런데 주님의 계획에 보면, 자 봅시다. 집에서 개 키운다고 봅시다. 저는 아주 어릴 때 개를 키운 적이 있어요. 내가 키운 건 아니고 우리 집안에서 키운 적이 있는데 개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마음에 드느냐 하면 개가 혓바닥으로 물을 핥아서 물을 먹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왜냐하면 헐떡거리면서 먹는 그 소리 있잖아요. 도저히 인간세계에선 나올 수 없는 너무나 맛있게 물을 저렇게 맛있게 먹는 존재는 처음 봤다. 철퍼덕철퍼덕 물 먹는 소리가 10미터에서도 다 들려. 그게 그렇게 보기 좋았어요. 왜? 주인의 자부심이 막 올라가. 너 내가 물 안 줬으면 죽을 뻔했어.

바로 양이 하는 행동에 대한 하나님에 찬양이 되는 경우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는 때가 언제냐 하면 허기질 때 오직 목자에게만 생각과 관심이 다 쏠렸을 때 따로 내가 악마를 이긴다고 설치지 않고 돈키호테처럼 미치지 않고 그냥 남이 뭐라던 간에 그냥 나는 한 마리의 개가 되어서 주님 주시는 사료나 물을 헐떡거리면서 맛있게 먹어줄 때 자식 입에 먹는 것 들어갈 때 부모가 그렇게 예쁜 거예요. 물론 그 자식도 어릴 때 자식이고. 커서는 그게 안 되지요.
허기질 때 말씀에 허기질 때 밤이나 낮이나 말씀으로 내가 시냇물을 찾는 사슴이 허기질 때 주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지요. 놀라운 사실은 이 개를 주님의 계획에 의해서 뭐로 바꾸느냐 하면 이 개를 자기의 신부로 바꾼다는. 개는 개인데 주님은 이걸 사람 취급하는데 그냥 사람이 아니고 주님의 신랑의 신부로 바꾸는 거예요.